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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關係)의 삶과 授受 의 法則, [0]

김용구(yon***) 2017-11-05 07: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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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關係)의 삶과 授受 法則,

 

그래, 왜 친분이 돈독할수록 그 양만큼 섭섭(유감)한 이유와 동기가 무엇일까? 

인생(인간)관계의 삶에서는 유감(서운한 것)스러울 때가 많은 법이다,

상대에 대해 유감이 많다는 동기는 그 상대와 친분이 너무 돈독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표시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분변해 보자,

또한 친분관계에서 유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는 상대에 대해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이 충족되지 않는 결과에서 피력(도래)되는 나의 욕심적이요, 공치사(생색)적인 감정이요, 참으로 우준한 발상이라고 조심스럽게 분별해 보자,

 

또한 상대에 대해 기대를 크게 가지고 있던 것이 수포(물거품)로 되었다고 판단될 때 유감이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고 분변을 해 보자, 

이렇게 분별하는 이유는!!

역으로 상대와의 관계에서 아주 밀접한 친분이 아니고, 상당한 거리(상거)감이 있는 관계라면, 그 거리(상거)의 비례만큼 유감도 갖지 않게 된다고 정의하는데서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고 설명을 해보게 되느니,

 

해서 친분의 정도(척도)와 유감(섭섭한 마음)의 정도(척도)는 상호 정비례되는 것이라고, , 친분이란 다시 말해 친분이 성립되고 더욱 돈독히 되려면 상대에 대해 배려가 요긴한 것인데,  

 

그래, 향후 내가 배려한 만큼 상당한 보답을 받지 못할 때, 즉 내가 상대에게 배려한 만큼 충족되지를 못했다고 계수될 때,

나의 정직한 반응은 어떠할까라고 질문하면 질문한 회수만큼 잔소리이지, 상대에 대해 유감을 갖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요, 인간관계에서 소위 말하는 授受法則이다,

그래, (배려 배품)만큼 받지를 못할 때, 또한 받은 만큼 주지를 못하게 될 때,

여지없이 친분의 균형(레벨)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유감 된 감정으로 서로 이별(격리, 단절)하게 되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분변하며 정의해 보자,

 

그래, 다시 한 번 언급을 한다면, 상대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다는 이유와 동기의 원인과 목적은 자기의 이권 때문이라,  

, 섭섭함은 이기적인 발상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정의를 해보자,

해서, 섭섭(유감)함의 정도와 이기적인 욕심의 정도와는 상호 정비례 된다고 감히 말해보자,

, 무언인가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든지 미흡하다는 감정의 결론에서 표현되는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래, 결론부터 말하면, 마냥 인간에게 욕심이란 근성적인 본성이 없다면 관계의 삶에서 유감(섭섭한 마음)은 무발생 될 것이다,

,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즉, 자기를 부인하면 어찌 섭섭하겠는가! 내가 죽으면 어찌 욕심이 존재 하겠는가? 뭐니뭐니해도 내가 문제로다!

 

그래, 결론적으로 주기(베풂)를 싫거든 받지도 말라, 또한 받으려면 주려고 하지를 말라, 

또한 받았으면 그 이상의 것을 주어라, 이 법측의 준수만이 상대와의 친분관계를 계속 돈독히 유지하는 비결이요, 최상의 방법이요, 첩경(지름길)이요 고도의 지혜라고 힘있게 주장을 해 보자,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6;;33> 

 

!. 여기서 잠간 쉬어 가자.  

그리고 관계의 삶에 대한 낙서를 나열함에 있어 좀 더 심도 있고 書讀하게 될 尊者의 마음에 진지하게 와 닿을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이 그야 말로 넘치는 명석함으로 나열하기를 기대하나,

필자의 짙지 않은 먹물이요, 너무나 짧은 가방끈인지라 어쩔 수 없이, 길지 않은 가방끈을 짙지 않는 먹물에 담그는 심정의 범위(수준) 안에서 상고 할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고심을 하면서 휴식을 마치고 더듬더듬 거리며 이어보자구나,

 

그래,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상고해 보자구나, 

내가 누구에 대해 서운(유감)한 마음을 소유하게 되는 이유와 동기는...?

 

{1}....그 상대는 나와 친분이 아주 엄청나게 두터운(돈독) 관계였다는 증거라, 

, 결코 생면부지의 초면인 관계라면, 유감적인 감정의 반응을 표현할 이유와 동기가 결코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해서, 친분이 두터울수록 더욱 가깝게 관계를 유지 할수록 상대에게서 기대하는 것이 많다는 증거도 된다,

 

{2}....내가 상대에게 유익을 많이 주었다는 수학적인 계산(계수)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은혜에 대한 응답(보답)이 돌아(응보)오지 않는다고 계수하니깐, 상대에 대한 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 인륜(비혈연)적인 관계의 삶에서는 상대를 통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을 때, 그 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 되지만,

주고받는 덕에 균형(레벨)이 깨어질 때는 관계의 단절을 불러오는 절대적인 요인이 된다고 분변하면 이의를 제기할 위인이 있겠는가?

 

{3}....내편이 되어주지를 않을 때, 즉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내가 인륜적인 도덕적으로 하자를 발생하게 한 경우의 상황을 불문하고 무조건 내편에서 나를 두둔하고 지켜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도리어 치지도외 하든지 면책할 때, 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해서, 끼리끼리(유유상종)의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고 분변해 보자, 

받은 만큼 주어야 하고, 준만큼을 꼭 받아야 되는 인륜적인 관계!.

그래, 봉사나 베풂은 그 자체의 덕으로 기쁨을 만끽하지 못할 때는 봉사의 참다운 덕과 의를 상실한 것이 되기 때문에, 봉사자는 그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고 정의 한다면 과연 정답인가를 생각을 해보자,

 

공치사(생색)적 발상

그래, 인간의 근성(본성)은 생색(공치사)를 하고 싶은 성품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시네,

해서, 상대에 대해 유감을 갖고 있는 것은 일종의 공치사적인 발상이다, , 받은 것보다 준 것이 많다고 계수하기 때문이다,(당신에게 유감이 정말 많아!~)

그래, 다시 말하면 상대에게 베푼 것에 대한 생색(공치사)을 자기의 마음의 밑바탕에 깔아놓고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곧 당신에 대해 정말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되네 그려

그래, 이말(어투)을 조심스럽게 해석(풀이)을 하자면....

내가 당신에게 베푼 은혜가 얼마인데, 내게 보답을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인가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인가? 라고 하는 뜻을 다른 감정으로 즉, 표현을 바꾸어서 말한 것이다. 라고!,,,

 

그래, 인륜적인 관계의 삶에서는 베풀고 즉. 주고서 생색을 내려면 차라리 베풀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

해서, 주려면 되갚을 능력이 전여 없는 불쌍하고 가련한 자에게 주라,고 주님은 말씀 하시네,<14;1214 1;27>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되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14:1214>,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1:27>.

 

그래, 결코 축복된 베풂(봉사)이란, 오른손이 한 것을 외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야만 참다운 축복을 누릴 수 있으리,

해서, (自我)라는 존재를 버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지 않으면, 그 봉사 자체가 쓰레기 같은 것이요, 결코 구더기 같은 육신적 이여서 마냥 추하게 되느니,

그래, 무엇이든 내가 할 때는 본성적으로 그 공덕을 생각하게 되어 나를 들어내고 싶은 충동의 근성적인 본성을 어이하리,

해서, 봉사도 참으로 중요하지만, 주는 태도와 주고 난 향후의 자세가 더더욱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래, 만약 그 자선(봉사)에 대한 생색내는 마음을 갖게 될 때는, 그 봉사는 즉시 빛을 잃고 퇴색 되느니,

, 봉사 자체만 나타나면 황홀한 빛을 발휘하겠지만, 그 봉사가 봉사자와 같이 등장하게 되면, 참으로 퇴색되고 꼴 볼견이고 추한 봉사가 되고 만다는데 동의 되구나,

 

그래, 마태복음 20장에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말씀은 서열이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고 앞 구절의 문맥을 잘 상고하면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즉, 생색을 하는 봉사는 참으로 주님의 앞에 가면 추하게 될 것이라는 결산을 의미하는 것이라 분별을 하자,

그래, 줄 때(봉사)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 아닐 때는.... 곧 그것은 육신적이요 생색의 심리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는 곧 평안을 잃어버리게 되느니,

그래, 이는 왜인가? 그것은 향후에 그로 인한 충족을 채울 수 없으니깐,

해서, 봉사는 반드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할 것이야,

 

6:1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고전 13:13 에서,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0:3042 에서,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16;24 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20:35 에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해야 할지니라,”

 

벧전 4:11 에서,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고전 10:31 에서,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3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3:110 에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8:32 에서, 자기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授受法則에 대해서 좀 더 상고해보자 

다시 한 번 해석하자면, 수수의 법칙이란 준만큼 받아야 하고 받은 만큼 주어야 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준만큼 받지 못할 수도 있고, 받은 만큼 주지를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 법칙이란 용어를 사용하는가?  

, 받은 만큼 주어야하고 준만큼 받아야 하는데, 차이를 보이면 즉 균형이 깨어지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초래) 되는가?

한번 생각을 해보자!

그래, 준만큼 받은 것이 미흡하다고 생각할 때, 어떤 마음의 태도를 갖게 되는지 또한 내 심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어쩐지~ 말이요!.

1, 섭섭한 생각을 갖게 된다.

2,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진다.

3, 背恩한 기분을 갖게 될 수도 있다.

4, 다시는 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5, 자존심이 꺾기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6, 상대와의 친밀감에서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

 

그래, 이렇게 授受의 균형(레벨)을 유지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불미하고 매끄럽지 못한 형상 때문에 법칙이란 용어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구나!.

해서, 준만큼 받고, 또 받은 만큼 주어야 하는 것이 人之常情이요 세상적인 이치라,

해서, 이 전례적인 순리된 법칙에 도전 한다든지 불균형을 만들 때는 상호간은 정상적인 만남의 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라 정의 되구나,

 

그래, 이것이 세인들이 살아가는 형평의 원리적인 법칙이요, 관계지속의 수단이며, 수학적인 사랑이라,

그래, 아마도 내가 준만큼 보다 적게 받으면 어쩐지 마음이 섭섭한 것은 인간의 근성된 본성을 지배할 수 없고 통치(다스림)를 할 수가 없는 고로, 발생하는 수작일 것이요 억제할 수가 없이 표현되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준 가치보다 더욱 넘치게 받으면, 마음이 흡족하고 기쁜 감정을 갖는 것 역시 욕심으로 꽉 차 있는 본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인간들의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은 세상의 법칙과 대조(판이)를 이룬다,

 

, 받는데서 기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조건 없이 주는데서 기쁨을 누려야 된다고 말씀하시네,  

, 수수의 법칙이란 문구가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줄행랑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에서 이의를 들어낼 수가 없다 하겠다,

 

*참고 되는 말씀을 보자,  

 

그래, 산상수훈의 한부분의 말씀 중에.....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며,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5;46~ 6;32~>

 

*주님의 세인들이 사고인 수수적인 법칙에서의 삶이 아니라 즉, 정도의 통상적인 보통의 삶이 아니라, 위대한 삶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 진정한 주님의 제자의 자세라고 교훈하심에 도전을 받아야 할 것이구나,

해서 누구에게서 받는데서 흡족의 기쁨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고 또 주어서 줄 것이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자세(태도)된 마음에서 흡족함을 갖게 되고,

받는데서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일행처럼 주는데서<내게 은과 금은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그리스도 나사렛 이름으로 걸으라,<3;6>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을 준수하면서 마음의 평강을 누린다면, 이는 세상이 어찌 감당하랴! 이런 삶에 주인공들이야 말로 성숙한 그리스챤이라고 칭해도 아무런 하자도 없고 과언이 되지 않으리!.

그래, 준만큼 받는다면 나의 욕심적인 본성은 동요(動搖)가 없겠지만, 허나 참으로 의미 없는 존재요 세인과 무엇이 다르랴?

주님은 책망하신다, 그저 썩은 물줄기 따라 힘없이 둥둥 떠내려가는 낙엽과 진배 없으리.

 

그럼 나는 어떤가! 준만큼 받지를 못했을 때, 내 마음에서 어떤 동요가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였는가!.

만일 섭섭함을 경험한적이 있다면 나도 역시 별 볼일 없는 미성숙한 성도인 것을 증명되었노라, , 소위 세인들의 추구하는 수수의 법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슬프고 부끄럽게 생각하자,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도다”<20;35> 

 

그래, 주는 양(가치)보다 받는 양(가치)이 많으면, 이는 주고(배려)자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받기를 좋아하는 위치를 고수하는 사람임을 알찌라, 정말이야! 

또한 많이 받으려고 변측(잔머리, )적으로 주는 것은 곧 사기요 토색이라,

또한 주고자 하는 여건(태도)에는 게으르며 평안이 없고, 받는 여건(태도)에는 신속한 동작으로 평안을 찾는다면 어찌 이기적인 기생충과 동류라 부인 하겠는가!

 

그래, 그 누구나 이세를 떠날 때 가지고 갈 수가 있는 것이 무엇이랴?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자기의 육신 된 고기덩이 하나도 지탱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해서, 이세에 존재할 때, 내게 있는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주는 것만이 선견의 참다운 지혜라. 또한 주는 것만이 남는 것이요, 고상한 미덕중의 미덕이라,

 

내게는 은과 금은 없으되, 내게 있는 것을 너희에게 주노니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3;6>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장인 아가페적인 사랑이 아니라면,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고질적인 본성이 아닌가 싶다.

그래, 고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늘 베푸는 사랑을 삶을 살았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늘 언급했다고 한다.

내가 받은 사랑은 늘 과분하고, 내가 베풀은 사랑은 늘 미흡했다, 는 마음과 정신으로 살면서 당신의 머리에 있던 사랑이 지척인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70년이 소유되었다고,

 

그래, 아주 인간세계에서 참으로 모범된 삶을 살다간 위인의 명언을 따른다면 이는 행복의 비결이 될 것 같다는 분변하게 된다. 

 

그래, 상대에서 유감을 갖게 되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됨과 같이 생색을 내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심이 인간의 본성이 되기에 절대 자아가 죽지 않는다면 이는 절대로 성공한 살미 될 수 없다는 결론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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