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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하는 사람이 최고 부자다. [0]

김용구(yon***) 2017-11-02 09: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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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하는 사람이 최고 부자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범사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20>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50;23>

너는 범사에 그(하나님)를 인정하라”<3;6>

 

자기에게 유익되고 좋은 일에 감사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다,

자기에게 유익되고 좋은 일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미개인입니다.

그러나 슬프고 궂은일에 감사 한다는 것은 아무(대중)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궂은일에 감사하는 자세는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즉 존귀하고 위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고상한 인격이나 큰 믿음을 가진 자마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역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일은 훌륭한 인격을  나타내는 시금석이 되는 것이라 분별됩니다.

 

그래, 역경의 광()풍이 자신을 향하여 휘몰아치고 있는데, 어찌 감사 할 수 있을까요?

이는 혹 자기에게 좋은 일을 만나도, 이는 자기의 능력의 댓가인줄 착각하고 감사는커녕 목에 힘주는 자세를 취한 경험이 없는가?

해서. 위대한 인격은 그만두고 보통인으로 유지하는 것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가 없다는 결론으로 부끄럼을 인내 해 보노라,

내 은혜가 네게 족 하도다,<고후 12;9. 43;2,>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13;5,>

범사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20,>

 

그래, 문전걸식을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참으로 감사해야 한다고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보육하는 보육모의 진정 천사 같은 봉사자의 사랑다운 진언이라,

그래, 거동할 수 없는 일급장애 아이들을 돌보며, 문전걸식은커녕 그냥 누워서 그의 보육모가 그 입에 넣어주는 음식물도 절반은 흘리며,

그 절반마저도 소화기능이 약하여 제대로 소화시킬 수 없는고로, 구토하는 때가 허다하다고 하니, 어찌 보는 자로 하여금 마음이 편할까요?

 

그런데. 뇌성마비의 장애자들을 돌보는 보육모 자신도 고통을 자주 토해내는 3급 장애인이라!

그래, 자신의 불편한 육신을 돌보기도 힘에 겨운 때가 많은, 그의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그래, 그 사지가 온전하다고 자부하는 정상인 들은 감사는커녕 불평하며 원망의 통곡소리 같은 발언이 그 입에서 멈출 날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래, 그 일급 장애인에게 최대의 소망이 무엇이냐고 질문한 결과,,,,

그 뇌성마비 일급장애인은 자기의 최대 소망이 무어라 자신 있게 답을 했는데, 이 글을 읽는 귀하는 그들의 최대 소원 중에 그 소원이 무엇이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1...“부자가 되는 것일까요? 아니랍니다,

그 질문에 대답은, 문전걸식하는 신세도 감사하니, 스스로 보행할 수 있도록 건강만을 바랄 뿐이다. 라고 대답하는 구김 없고 소박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 정상적인 육신을 소유하고 참으로 감사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불충이며 배은(背恩)이라!

그래서 참으로 인간이 감사하지 못하는 동기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욕심에서 비롯된 배은이라,

;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맹인 같은 자기의 동태눈을 높이 들어 여의도 63빌딩만 바라보기 때문이라,

허나 역으로 제례시장 통로에서 소형 수례에 잡화 등을, 조금 실고서 밀고 다니며, 찬송가나 유행가 등등 노래를 부르며 행상하여 그래 자신의 생계를 연명하고자 하는 장애(하지불구)자의 모습을 보자,

 

그래, 보행(기립 거동)할 수가 없어서, 차량의 타이어 조각을 엉덩이에 방석처럼 깔고 앉아, 두 손을 자신의 다리 역할로 땅에 의지하며 질질질~ 끌고 다니며 행상에 열심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귀하도 나도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는가?

~ ~ !, 참으로 불상하구나 하는 서글픈 마음으로 동정의 손길로 몇푼을 던져 보낸 것이 고작이 아닌가?

허나 말이요, 소액의 자비를 베푸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있다는데 귀하께서도 동감을 하시는가?

하면, 무엇을 망각했는지요?

 

그래, 그의 답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과 자세이다,

다시 언급하자면, (귀하)게는 무슨 축복이 그렇게 많아서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는 두 다리가 온전한가에 대해, 덧없이 흡족히 감사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 나는 정말 축복받은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감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든가? 하는 질문입니다.

해서, 지금 내 앞에 보여지는 그 장애인보다 조금도 고고 하거나, 선량하거나, 자비로움이 조금도 없거늘,,,, “나는 무슨 복이 그렇게 엄청 많아서 이런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도 없으며.

그저 감사하는 마음이 복받쳐 오지 않터냐 하고 질문하는 것이요?

 

헌데 그에 감사는커녕 내 눈을 드높이 하여 63빌딩을 바라보게 되면, 그저 내 신세가 정말 기구(처량)하구나! 하는 한숨으로 원망과 불평의 순간이 자주 발생될 것이다, 아니 자주 토하게 될 것이다,    

그래, 하나님의 말씀을 참고해 보자꾸나!

바울사도가 자기의 병(가시)을 고쳐 달라고 3번을 하나님께 간구를 드렸는데.

하나님의 응답의 내용은 바로, 병은 치료해주시지 않고,,,,

내 은혜가 네게 족 하도다, 너희 약한데서 도리어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2;9,>

 

그래, 바울은 하나님의 응답에 도리어 마냥 기뻐하고 감사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자!

그리고 그 누구께서도 또한 나도 배우자배워서 남 주나, 그래 !!감사는 욕심의 먹거리인가

!!부족함의 친한 벗은 욕심이라, 고 농()담을 해도 될는지!,,,,

해서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재로 부족한 상태가 아니고, 그만큼 그에 비례해서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고로. 기쁨(감사)이 없는 것은, 만족을 모르고 늘 부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부족함의 양과, 욕심의 양은 상호 정비례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누가 시비할까?

헌데; 만약 63빌딩이 나의 소유(오너)라고 가정을 해보자,

어찌 관리할 능력이 있는가? 참으로 모두가 그 더러운 욕심이라는 것이다,

허나, 63빌딩이 나의 소유가 아니라도, 무시로 방문하여 투숙할 수도 관광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꼭 63빌딩이 나의 소유주라고 해서, 1에 이 객실. 저 객실을 옮겨 다니며 투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8척의 객실 1칸이면 족하지 않는가?

 

大廈千間夜臥 八尺이요, 田萬頃이라도 日食二升이니라,<명심보감>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6:7>

 

{}을 사랑하는 자는 그 {}으로 만족함이 없고, 豊富를 사랑하는 자는 그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 되도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라”<5:11.12>

 

그래, 모두가 욕심이요, 이기적인 허세라! 해서 63빌딩 관리하는 또한 일국을 관리하는 고된 수고는 촛불각하나, 다른 사람에게 담당하게 하고,

나는 그리고 귀하는 아주 만고강산 백고야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에 정말 감사를 한없이 드려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도 육신적인 근성인 욕심이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 63빌딩의 소유주에게 유익한 부분이 있다면, 전도서를 기록하게 했던 하나님의 말씀대로자기의 목덜미 곧게 세우고 "이 건물은 나의 것이다" 라고 눈을 들어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무슨 그리 기쁜 유익이 있겠는가?

 

그래, 또 아니라면 다른 유익이 있는지 이 글을 읽는 그 귀하께서는 한번 찾아 설명을 해보시오?

해서, 하나님께서 나의 능력에 맞게 평안히 현 위치에서 고수할 수 있도록 하심에 더욱 감사를 드려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 지금의 내 위치가 얼마나 평안한 것인지를 실감하지 못하게 되니깐,,, 감사는커녕 짜증과 불평(원망)하게 되는 것이라,

, 불행을 망각한 사람에게는 행복 역시 잊어버리게 되는 것.

해서, 감사는커녕 더욱 자기의 몸을 비틀며 짜증을 부리는 지루함의 불평은 곧 망각 병이라고 피력한다면 누가 무어라 변명할까?

*망각은 은혜의 대한 배은이라, 고 주장한다면 누가 감히 손사래 치며 부인할까?

그 이유를 설명해 보자, 예를 들자면!!

그래, 사자성어 에서도....

知足知富, 또는 知足者富, 즉 자기 분수와 형편에 족한 것을 알고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큰 부자라는 것인데,

 

그래 염천 3복더위에 에어컨(냉풍기)앞에 항상~ 머물려 있게 되면, 그 냉풍기의 고마움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너무나 시원해서 도리어 한냉 병에 걸릴 지경이 되어도 절대로 감사를 알 수가 없다,

아니.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시원함에 취해서 그 고마움을 아주 망각해 버린 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 하도다, 네가 약한데서 곧 강하여 짐이라, 내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노라, 나의 강한 것들을 자랑하면 곧 꺾이게 됨이니. 도리어 약해질 수밖에 없도다,

네게 있는 것들 중에서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노릇 하였도다, 고전.4;7.8,>

 

그래, 귀하께서는 산소 또는 식수 등 물의 고마움을 진정으로 알고 얼마나 감사하였는가?

너희는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내 마음 가운데 진정 감사함이 없어질 때, 곧 그는 엄청 괴로운 인생이 되고 만다,

해서. 감사하는 것은 곧 기쁨의 표현이요, 사랑의 응답이요, 만족의 표현이라, 고 누구는 실토하더이다.

그래, 내 마음이 곧 교만해 있을 때는 절대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소유할 수 없으리,

해서, 오직 감사는 겸손한 자의 마음속에 흘러넘치는 은혜의 샘물이라,

 

그래 마태복은 20장으로 가보면, 대 경제 공황시대 즉, 일거리는 없고 일꾼은 너무나 많아 일거리를 잡는다는 것이 참으로 힘겨운 시대 그 시절.

그래서 그날 하루 일거리를 찾지 못하면, 자기의 식솔들이 굶주려야 하는 절박한 때.

그래, 아침 일찍 포도원 주인을 만나 하루 급여를 정하고, 하루 포도원에서 일을 하는 찬스를 얻었다,

그래,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마도 자기를 품꾼으로 채용해 주신 주인께 머리를 지면에 닿을 정도로 숙여서 감사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으리라!

 

헌데 그 후도 포도원 주인은 일일 장터에서 일거리를 만나지 못해 놀고 있는 여러 명의 품꾼들을 여러 번 인도하여 포도원에서 일을 하게 하였다,

그래, 종일(11시간)을 열심히 일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1시간 정도밖에 일을 못한 사람도 있었다,

이제, 태양이 석양에 기우려 작업()을 마치고, 임금을 받겠다고 포도원 주인 앞에 모여 있었을 때,

그 포도원 주인은 먼저. 마지막 포도원에 들어와 1시간밖에 일을 하지 못한 품꾼에게 아침 일찍 들어온 품꾼과 약속했던 임금액수를 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와 모진 더위도 불사하고 11시간동안 일을 열심을 낸 품꾼에게도 정한 임금을 주었다,

잠간! 여기서 이 부분에 대한 말씀을 옮겨보자,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는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20;812)

 

. 일거리를 찾지 못해 식솔들의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절박한 때, 고마운 포도원 주인의 배려로 일을 하게 되어 임금을 받았는데, 어찌 된 원망인가? 어인 배은인가?

아침에는 주인께 그토록 고맙다고 자기의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절을 했던 그가 어찌하여 주인을 원망으로 바뀌었는가?

그래, 화장실 갈 때의 마음자세와, 화장실에서 나올 때의 처신이 이처럼 판이 하단 말인가?

어쩌다가 감사가 원망과 불평으로 바뀌었단 말인가?

하여. 원망에 대한 동기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이는 一言으로 언급한다면 배은적인 욕심이라.

이를 구체세분화 해서 나열해 보자꾸나!.,,,

 

1; 자기의 이기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

2; 그리고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결과라.

3; 그리고 자기의 우월의식적인 과민에서 비롯된 수치라,

4; 또한 한없는 욕심의 본능의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요,

5; 또 은혜에 대한 감사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라,

6; 또 이웃이 땅을 사면, 내가 배가 아파 설사를 한다는 시기적인 질투의 본능에서 비롯된 발상이라는 것이라

 

고로. 자기의 현 위치(형편. 수준)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는 덧없는 욕심쟁이라,,,,,

또한 배은망덕의 어리석음이요 바보적인 원조이다.

또는 그는 자기가 만족할 만큼 채우기가 전연 불가능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바람 잡는 수고를 죽을 때까지 몸부림치는 마땅한 적격자이다.

또한 그에게서는 감사할 수 있는 자세를 영영 망각한 불행한 위인이 될 수도 있다.

고로. 현 위치(수준. 처지. 형편)에서 감사를 기대 할 수 없다면, 어찌 어느 때에 기대 하겠는가! 전여 불가능하다고 본 필자는 주장하는 정의를 하고 싶구나.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그는 이렇게 변명할지도 있겠다

 " 번 들어나 보자"

1...지금은 내가 너무너무 가난하고슬프고건강상태도 별로라서.

2...또 불어 닥친 애매한 일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이 겨워서요등등이라고 감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말 할 수 있겠으나,~ `

 

그렇게 변명하는 당자에게 이렇게 묻고 싶구나!.,,,

질문:... 그러면 어느 수준(형편) 되면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슬픔으로 산적해 있는 형편이 바닥이 보이면 확실히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 늙은 필자가 확실히 증언하네요.

당자의 시선을 이웃(타인)에게 돌리지 않고는

. 남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고 바라보는 이기적인 사고의 위인은 절대로 만족으로 인한 진정한 감사를 기대 할 수 없다는 것이 우주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진리의 요지부동한 말씀임을 힘 있게 증언 해 보노라.

 

그래, 상기에 언급된대로 우주의 크기(SIZE)를 모두 다 넣는다 해도. 흡족하다 할 수 없는 그대의 본성된 욕심(탐욕)을 어느 누가 무엇으로 채워서 감사하다 흡족하다 하는 표현을 진정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고로, 내 욕심에서 감사를 기대하지 말고, 남을 위해서 무엇인가 배려 할 때,,,

즉 무엇을 얻을까 하는 마음보다, 무엇을 즉 도움을 줄까 하는 마음에서 준비될 때 만끽 즐거운 것이라.

그래, 주기는 주어야 하는데 줄 것이 없어서 주변을 두리 번 거리며, 안타까워하는 그 천사 같은 마음,

그러나 무엇인가 주기보다 얻으려는 이기적인 정신으로는 연일 괴롭게 되느니, 그저 조금만의 양에도 만족을 소유하는 자가, 감사를 할 수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강조하심에 눈을 크게귀를 크게 열고 떠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만끽하는 귀하가 되시길!    

 

그래 상기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이 늙은 필자에게 주시는 경고(교훈)의 말씀으로 새겨주시고, 혹 이 필자와 동감이 되신다면 교훈이 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약 20여 년 전에, 일본의 어느 문둥병환자의 살아있는 간증이 횃불지에 등재된 부분이 너무나 감동적이여서 다시 한 번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감동적인 간증의 한편을 소개해보자.

한국에 추, 심 어느 목회자님이 일본에 방문하여 어느 문둥병 요양소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한 가지 감사하는 간증을 듣고서 마음에 상당한 감동과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래, 거기 한 문둥병 환자가 들어 왔는데, 그 사람이 천국복음을 듣고 구원(거듭남)을 받은 다음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다가 그 문둥병 균이 눈에 들어가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 말씀을 못 보게 되자, 얼른 점자를 배워 손가락으로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손가락으로 읽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참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이 무엇입니까? 손이고 뭐고 다 돌출한 부분은 떨어져 나가는 것이죠.

그래, 얼마 안가서 그의 손이 도저히 말씀을 읽을 수 없게 되자, 그는 입술로 말씀을 더듬으면서,

내가 참 내 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센싱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에 대해서 더없이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입술도 마비되자, 그는 혀를 내밀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아직도 나에게는 말씀을 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혀도 감각을 잃어 그분(성도)은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그래, 우리는 나의 몸 중에서 어느 한 부분이 부족하면, 그 부족한 것에 대해서 늘 답답해하고 근심하고 그랬는데,

그 문둥병자 신도는 어떤 한 몸의 부분에서 하나님을 인식(감지)할 수 있는 그 한부분이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무한 감사한다고 고백하는 것들이 얼마나 감동이 되며 부끄러움이 되는가요?

그래, 이런 실재적이며 입체적인 간증을 듣게 될 때, 그 얼마나 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기 그지없다.

참으로 어찌 하나님 앞에 고개를 어찌 치켜들 수 있겠는가! 참으로 하나님 안에 살면서 내가 참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 할 제목이 얼마나 많은 사람인가. 하는 도전을 받게 된다.

이에 독자님은 어찌 느끼셨습니까?

그래, 내가 믿는 것과 내가 행하는 것이 일치한가. 같은가. 동일한가. 아닐까?

그래,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팔거나 소유하거나 저축하거나 입거나 돈이나 그 무엇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행복은 매순간을 사랑과 은혜와 감사로 살아가는 영적이며, 최고 가치 있는 경험이다.

해서, 행복이란 선물은 사랑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보물도 아니다.

행복의 비밀은 수집하는 삶에서 감사하는 삶으로 돌아가는데 있다.

그래, 바울사도는 감사하는 비결을 터득한 사람이다.

 

그래, 그는 항상 기쁜 소식에 대해 감사함.

*감사와 고마움은 찬양과 기쁨의 생활을 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감사하지 않는 마음은 萬惡의 뿌리이고. 감사할 줄 모르는 것도 만악의 뿌리.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은, 충분한 것도 언제나 늘 부족하게 여기게 된다.

늘 부족하다 만족이 없으니 감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 최상의 찬양을 드리는 사람이 인생을 최대한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고 찬양을 하니깐 즐겁게 살 수 있더라.(바울의 고백)

 

*우리는 가진 것으로 행복할 수 없지만, 감사하는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생을 그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장 귀중한 시간을 자질구레한 일에 허비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 어디에서 이렇게 기도하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내가, 사물을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다른 것은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내가, 두 다리로 자유롭게 걸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문전걸식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다른 것은 바라지도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내가, 세상 잡음이라도 들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다른 것은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내가, 손수 밥을 입에 넣고 먹을 수 있고, 소변이나 대변도 스스로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다른 욕심은 언감생심 바라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상기에 언급한 장애인들의 간절한 기도 목록을 할 필요 없이 빠짐없이 모두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가 되십니까?

그래, 진정한 행복은 자기의 소유(재물)나 명예나 권력이나 즉 부귀공명에 비례되는 것이 아니고, 늘 감사에 비례된다고 누구는 누누이 강조합니다.

그래, 내게서 늘 부족한 것, 즉 없는 것을 찾아 방황하지 말고, 푼수와 형편에 맞게,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누리는 것이 곧 행복이며, 진정한 부자가 아닐런지요?

 

그런데 쌀 99석 가진 사람이, 1석 가진 사람에게 구걸하기를... 100석을 채울 수 있도록 달라고 한다는 말이 있는데,

1석 가진 사람이 자기의 1석을 99석 가진 사람에게 주면서도 나는 부자라고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부자라는 것이고,

역으로 1석마저 갈취한 100석의 소유주는 늘 만족할 줄 모른다면, 이는 거렁뱅이 문전걸식하는 자보다도 더욱 빈곤하고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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