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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고려장과...터치하지 말아야 할 3가지는.? [0]

김용구(yon***) 2017-10-22 15: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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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고려장과... 터치하지 말아야 할 3가지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否認)

하고 자기 십자기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그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16;24~27>

 

하늘은 드높고 말()이 살이 엄청 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봄 여름동안

비지땀으로 정성을 다해 수고한 농부에게는 그야말로 보람의 댓가를 풍성히 한 아름 안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야말로 풍요에 풍성을 더 하는 축복된 계절!

그런데 기상이변의 한 때 가뭄으로 인해 예년에 비해 수확이 많은 감소로 더욱 먹을거리 물가가 드높이 상승하여 서민들의 마음을 한없이 슬프게 해주기도 하는 듯, 거리는 온통 쓸쓸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주님께서 허락하실 줄 믿고 독자님들 앞에 커서를 잡아보나이다.

 

그래, 주님 안에서도 그 인생을 살면서도 여전히 핑계를 하며 책임전가를 잘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의 육신 된 첫 조상인 아담을 닮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생각할 수 있겠으나 너무나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그 예로 그 예전처럼 복음전함에 얼마나 성실과 정성과 언행이 무디어져 있으면서 즉 구도자를 사랑하는 마음도 또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얼마나 식어 마치 나의 마음이 얼음같이 냉냉이 굳어있거늘!.

 

그래서 전도에 열정이 전무하다 싶이 하거늘, 그래서 구원의 역사가 희소하거늘 나는 자꾸만 핑계를 하는 것입니다.

즉 시대의 탓이라는 것입니다. 즉 시대적으로 배가 너무나 불러 모잘 함이 없어서 복음에 등한이 한다는 것입니다. 1960 ~ 1970년경에는 이렇게 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시대적인 탓을 전여 배제될 수 없겠으나 그 100%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비롯하여 복음의 열정이 예전에 비해 얼마만큼 식어 Ice 가 되어있는지 참으로 주님 앞에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꿀꿀꿀 거리는 OLD BOY로 걸음이 시작되었는가요?

주님 안에 있으니 참으로 만고강산이로다. 왜인가, 이대로 세상을 떠날지라도 그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세인과 같이 그 두려운 지옥 갈일이 없으니,

고로 살아도 좋고, 죽으면 더욱 좋고, 가지고 있는 재물 별로이니 도적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 또한 마음이 만고강산이로다.

 

그래, 누가복음 12장에 가보면, 어느 부자 농부가 그 해()도 더없이 부지런하고 욕심을 내어, 경작하여 초가을에 자기가 이룩한 들녘의 오곡백화를 내다보니,

그래, 예년에 비해 대풍년이 되어 더욱 많은 수확이 예상되나, 그 많은 곡식을 모두 다 쌓아 놓을 곡간이 적을 것 같아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 “이 많은 곡식을 어찌 할꼬!. 가난한 이웃에게 주자니 얼마나 아까운가! 너무나 아깝도다. 썩어도 내 집에서 썩어야만 내년에 거름이라도 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고민이도다. 어찌할꼬! 어찌~ 할꼬! ~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기존곡간을 헐어 다시 더욱 넓게, 즉 내년에 또 풍년이 될 것을 예상해서 더욱 크고 넓게 증축하면 되겠구나. 라고 밤새 생각한 답으로 새벽잠을 조금 이룹니다.

 

!.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갈증이 나듯이, 가진 소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욕심이 있는 법.

그리고 이웃을 믿을 수 없다며 담()을 높고 견고하게 쌓고, 井底之蛙 곧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사는 법,

그래, 이웃이 나의 도적이요 또한 사기꾼으로 모두 보인다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도적이 구멍을 뚫을 염려 때문에 깊은 수면에도 장애가 되며 걱정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라,

고로, 문단속이 제일로 염두에 근심되어 외출 중에도 혹 건망증으로 곡간 문단속을 소홀히 하였다고 의심되어 외출을 포기하고 부랴부랴 귀가하여 곡간단속을 재확인하고 아무런 일이 없으면 아~아 다행이로구나!,

 

그래, 이제라도 곡간단속 집안문단속을 좀 더 세심하고 철저히 해야만 되겠구나 라고 다짐하고 두세 번 주얼거립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곡간(Bank)이 이자가 비싼가! 어느 상품으로 저축을 해야만 더욱 안전하고 이자를 많이 받게 될까! 참으로 고민이로다.

또한 은행도 이제 믿을 수 없는 고로, 한 구좌에 5,000만원 이상은 잘못하면 그냥 배가 부르지 않는 떡을 먹은 꼴이 되니깐,

여러 곡간으로 나누어 두어야만 되는데, 믿을 수 없어 와이프 구좌로 저축할 수도 없고 어찌해야 좋을까!

그래, 마냥 고민이 되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도다. 만일 문단속을 소홀히 하여 강도가 침입하여 금궤가 들어있는 저 금고를 오픈하라고 목에 비수를 들여대고 위협한다면, 이는 큰일이 아닌가! 그렇다고 부인하면 나를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고로 어찌 눈을 감고 잠을 마음 편히 잘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취침 중에라도 눈을 뜨고 자야만 되지 않겠느냐! 그래 그런지 밤잠을 이렇게 설치니 자꾸만 백주 한 낯에도 눈꺼풀이 감기는 졸음으로 하품만이 거듭되는구나! ~ 아이쿠 졸려 이 도적 때문에 내가 더욱 몸이 쇠약해지는구나. 라고 도적을 한없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래, 이제 내 곡간에 여러 해(100) 먹을 것을 준비 해놓았으니, 이제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해보자.

그런데 오늘밤에 혹 저승사자가 나를 가자하고 개줄 매서 끌고 간다면, 이 많은 재물 그렇게 이웃에게 아까워서 쌀 한 톨 주지 않고 모두 다 쌓아둔 재물을 그냥 두고 죽어야만 된단 말인가! 또 잠이 오지 않는구나!

고로, 잠을 자면 안 되겠구나 설마 눈을 뜨고 있는데, 저승사자가 나를 데려가지는 못할 거야!

 

가을이라, 가을하면 그 무엇이 연상되나요?

이는 추수의 계절. 하늘은 드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피 땀과 눈물로 수고한 농부들이 기쁨으로 그 결실을 한 아름 안고 귀가하는 계절. 인생의 모든 수고의 대한 결산의 계절.

또한 풍요에 풍성을 더하는 계절,

또한 젊은이들이 사색에 빠져 흥겨워하는 오색찬란한 단풍의 계절,

그런가 하면, 긴긴 여름 그 무더위를 무릎 쓰고, 열심히 수고한 개미와는 반대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고 병들면 못 노나니! 하는 타령으로 시원한 그늘 찾아다니며 엔죠이에 만끽한 베짱이에게는 개미가 그 수고의 댓가로 이룩한 황금벌판의 오곡백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후회의 눈물을 주먹으로 자꾸만 닦는 계절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는 그리고 당신은 당신은 지난 기나긴 여름이 개미의 인생이었나! 아니면 베짱이의 인생이었나! 뒤돌아 보면서 확인하며 마냥 아쉬워하는 계절.

~아 아~아 또 슬퍼지는구나! 참담해 지는구나!

인생의 종착인 그 무덤은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와지는데!.....

~아 아~아 또 더욱 슬퍼지노라!.

가을바람은 이내의 가슴을 더더욱 쓸쓸하게 울러주는 듯 무정하구나!

이제 멀지 않아 등 따습고 배불리 만끽하는 개미를 지켜보며 콜드하고 헝그리한 배를 움켜지고서 쪽박 챙겨들어 개미집에 구걸하는 때가 정말 임박 하였구나! “내 신세야, 내 신세야!.

 

그래, 가을 미풍(微風)에 힘없이 나뒹구는 낙엽을 보노라면 또한 농부들이 기나긴 여름동안 피땀 흘려 가꾸어 놓은 오곡백화를 한 눈에 보며 이렇게 쓸쓸한 한마디 꼭 말하고 싶은 것은.... 금년의 나의 결실된 수확은 그 무엇인가! 또 허송세월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그 무엇을 남기었단 말인가! 그 무엇을 위해 동분서주로 매진하며 생명과 같은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했단 말인가! 참으로 인생이 또한 한심하도다. 가련하도다.

그래, 주여. 주여, 만 열심히 부르며 생각만 하다가 금년도 종착역이 한걸음 다가오는구나!

 

그래, 때가 되면 결실의 계절. 수확의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 얼굴을 보이는데, 그래서 농부들은 그렇게 마냥 즐거워하는데 나는 어찜인가요?

고로 그 누가 묻기를 금년은 당신이 그 무엇을 얼마만큼 남겼느냐고 비소(鼻笑)을 한다면 그 어찌 얼굴을 들까나!

흰머리는 늙은자의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16;31>고 하였는데

흰머리가 아니고 그냥 파뿌리가 되어가는구나! 고로 무엇인가 보람된 인생이 아니라면 그 인생은 허무(虛無) 즉 쓰레기나 호리도 진배없도다. 전여 무가치 한 것이라. 구더기 인생이나 호리도 다름이 없도다. 또한 죽은 시체와 조금도 진배없도다.

그래, 전여 무가치한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이 같도다, 고로 늙은 자의 생명이 어찌 얼마의 가치가 있다 하리요?

그래, 직장에서도 또한 나라에서도 또한 나의 안식처인 둥지가 되는 가정의 식솔들에게서도 묵시적인 버림이 되는 천덕꾸러기 신세라는 것이 이구동성이라,

고로 늙은자는 젊은자의 생()에 가로 거침이 되는 듯, 마지못해 대우를 해주는 듯 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이 노인 문제는 나라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더없이 큰 문제거리로 대두되고 있으니... 그 어디에 자리를 펴며 어찌 허리를 곧게 하여 처신하리요?

고로, 앞으로 약 10여년 후면 65세의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게 되어 참으로 걱정스럽다고 정부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 어찌할꼬! 직장도 나라도 가정도 이 어찌할꼬!

무엇하러 그렇게 식충이처럼 곡식만 축내며 오래 오래 사는가! 그래도 정초 명절 때면 젊은 자식들은 그 늙은 부모에게 정중히 세배를 드리며 덕담을 드리는데!....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 아주 오래 오래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십시오. 저의 들이 최선을 다해 잘잘 모시겠습니다.

얼마나 모순인가요? 언어도단이로다. 그 덕담을 믿는 늙은 부모 속으로는 좋아라 하면서고 곁으로는 무슨 소리인가?

내가 너무나 오래 살았어! 라고 응답을 하지만, 빨리 죽고는 싶지는 않은 것이다.

참으로 의학의 발달의 원인인지, 아니면 먹거리 풍성한 탓인지. 노인이 문제로다 참으로 노인 자신도 문제로다.

그래, 壽則多辱이라 했는데!... 내 자신이 참담하도다. 슬프도다. 괴롭도다. 한심하도다. 이제 모든 정욕 다 쇠하고 아무낙도 없어지니 땅에 있는 이 장막은 곧 무너질 때가 되었도다.

 

그래, 이제 정신이 흐려지고, 행동이 둔한 무거운 자기 몸뚱이를 가느다란 지팡이에 의지하여 절음절음 비실비실 거리며,

그 쓸쓸하고 한적한 공원을 찾아 더듬거리며 걸어가는 저 늙은이 꼭 자기의 무덤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일보 일보 가까이 가까이 걸어가는 것 같도다.

아니 같도다 가 아니라,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인생의 걸음의 그 목적지는 무덤이 되지만, 늙은이의 걸음은,

그저 자기의 무덤에 들어가기가 싫은 듯이 자꾸만 주저하며 머뭇거리는 것 같이 그렇게 민첩하지 못한 더듬이가 되어서 가고 있는 저 늙은이!....

인생 80~90년을 살아도 이제 남는 것은 모세의 고백대로 피어린 수고와 슬픔뿐이라. 어찌 자랑이 될 수 있을까요?

 

그래, 황금벌판의 누런케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오곡을 눈여겨 보노라면!......

하님이 만드신 곡식(벼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더욱 많이 숙이는 법인데,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은 익을수록 즉 많이 배울수록,

그리고 경륜이 많을수록, 또한 더 많이 가질수록, 고개를 굿굿이 세우고 또 세운다는 것인데,

해서, 주님은 너희가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주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 하신다.<20:26.27 23:11.12>

 

꿀꿀이 인생...

그래, 꿀꿀이 인생이로다! 꿀꿀이 인생이로다! 코앞에 놓인 삶은 콩만 바라보고 욕심내어 쉼 없이 주저 없이 거침없이 도살장을 향하여 질주하는 꿀꿀이 돼지 같도다.

고로, 늙은이는 꿀꿀거리며 먹이만 한없이 끈임 없이 축내는 늙은 도아지 같도다.

고로, 어찌 그 누구의 호리만한 환대(歡待)를 기대하리요.

그래, 하루해는 서산에 땅거미를 그리며 기웃기웃 넘어가려 마냥 아쉬워하는데, 계속 꿀꿀거리며 먹을거리만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도다,

아아~아아! 이웃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면 즉 보람된 발걸음이 아니라면, 이타()

아니고 이기적인 인생이라면 모두 모두 꿀꿀이 인생일 것 같도다.

 

그래, 욕심껏 자기의 복고여산인 배만을 위하여 동분서주 몸부림치며 꿀꿀꿀 거리는 인생이라.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무슨 가치가 있으리요?

차라리 돼지는 그렇게 탐욕적인 생리적인 동물로 오직 자기의 배만을 위한 먹을거리로 일생을 마치지만 그래도 그는 인간에게 보양식이 될 수 있는 고기를 제공하지요.

고로, 돼지의 욕심껏 먹는 먹을거리에 대해 인색 없이 제공한다오.

왜인가요? 이는 그 먹거리 값의 몇 배의 가치를 되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

그러나 인간인 나는 어떠한가! 고로 어느 면에서 돼지인 인생만도 못하도다.

즉 욕심 많은 돼지의 삶에도 정말 진정 비교할 수 없도다.

 

인생의 가치란...

인간의 생명이란 그 우주보다 귀하다 그 존엄성은 우주의 그 어느 것도 감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에서 천하를 얻고 자기의 목숨을 잃는다면, 그 유익이 무엇이냐고 묻고 계시네,

고로, 인간의 생명이란 그 무엇과도 절대로 바꿀 수도 환산할 수도 없다고 하셨네.

 

그러면 나의 생명이란 그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여생(餘生)이라. 육체의 남은 때라. 고로 나이란, 이미 지난 간 과거()는 나에게 죽은 생명이고,

현재()를 비롯해서 미래를 의미함이라고 정의한다면.<벧전 4:2.3> 내가 육신 된 흙덩이 속에 담겨 있을 때를 이세의 생명이라고 정의 한다면,

내가 육신을 떠나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정의 한다면, 이세의 생명을 너무나 잘잘 관리할 때, 영원한 생명이 더더욱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또한 이세의 생명, 즉 육체의 남은 때에도 신세대의 생명과, 센세대의 생명의 가치란 엄청 차이가 있다고 분변고집을 해본다면,

그래, 생명의 그 자체는 요지부동 우주보다 귀하고 존엄하지만, 그 가치는 센세대는 신세대를 따라갈 수 없이 가치가 없음을 절실히 자감(自感)하게 된다는 것이요.

즉 늙을수록 더욱 가치가 없고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요, 천덕꾸러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아무런 쓸모없이 신세대에게 가로 거침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노인화 됨은 발전의 저해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래, 식충이처럼 먹을거리만 축 낸다는 것입니다. 고로, 타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더욱 노인화 스피드가 빠르다는 것입니다. 고로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래, 멀지 않아 신세대 1인당 센세대 3~4명을 감당해야 된다는 통계적인 자료입니다. 의학의 발전인지. 아니면 먹을거리 풍성인지 인간의 생명의 수한이 너무나 길다는 결론적인 답이라 분변되는 것입니까?

고로 그 옛날 어느 왕조시대에 60세만 되면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고려장이 허용이 되었는지...

다시 등장해야만 되지 않을까! 고심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고로, 신세대는 70%이상이 센세대를 부양할 의사(意思)가 없다는 설문조사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신세대들이여! 멀지 않은 내일의 코앞에 자기에게 되물림이 되고, 대물림이 된다는 엄연한 사실이요.

그래, 그 옛날 60세가 넘는 늙고 병들은 자기의 부모를 지게에 실어 깊은 산골에 버리려고 행보 중에 어린 손자가 동행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깊은 산골에 늙고 병들은 부모를 버리고 지게까지 버리려고 하니깐, 그 손자가 자기의 아버지에게 가로왈!......

아버지. ”아버지. 저 지게는 버리지 말고, 도로 집으로 가지고 가자고 졸라대는 것입니다.

 

그래, 의아하게 생각한 그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묻습니다.

, 왜 어찌하여 할아버지를 지고 온 이 낡은 지게를 도로 집으로 가지고 가야만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니깐.... 그 손자인 그 자기의 어린 아들은 무엇이라 정중히 답을 하였을까요?

: “아버지 죄송해요! 그러나 이 지게가 있어야만..... 훗날 아버지가 할아버지처럼 늙고 병이 들어 먹거리만 축내게 되면!.....

이 불효된 소지가 아버지를 이 지게에다 주저없이 실어 지고서, 지쳬없이 이 곳에 할아버지처럼 버릴 것이 아닙니까?

 

고로, 이 지게가 없으면 그 무엇으로 아버지를 실어다가 버립니까? 고로 이 지게는 절대 버리지 말고, 집으로 꼭 가지고 가야만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더랍니다.

이는 수십 년 전에 TV에서 지켜본 기억이 납니다. 고로 자기의 부모를 나 몰라 라고 버린 자식.

그는 바로 내일 그 자식에게 똑같이 대물림으로 버림을 당하게 된다는 요지부동한 진리. 이를 되물림 또는 대물림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 종두득두(種豆得豆)라 원인에 따라 그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는데,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원인을 제공한 주인공이 꼭 받게 되는 것 아닙니까?

 

고로, 어린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는 찬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가 없다는 진리적인 속담이 있습니다.

그래, 늙고 병들은 할아버지를 지게에 실어 깊은 산골에 버린 아들은.... 자기의 아들에게 같은 지게에 실려 깊은 산골에 버려 까마귀나 독수리나 산짐승에게 먹거리가 되게 했던 것이요.

고로, 손자의 간청을 듣고 그 이유의 답을 들은 아버지, 왠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아들의 말에 혼비백산(魂飛魄散)으로,

회개하고 도로 그 늙고 병들은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시어 따뜻한 안방에서 최선의 효도로 받들며 살다가 산짐승의 밥이 되지 않고 정중히 장례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75%이상이 자기의 부모를 봉양하지 않겠다고 만구일언이요 이구동성인 신세대들!, 내일의 자기의 센세대가 되면 그의 자식으로부터 100% 몰인정의 고배(苦杯)의 댓가를 꼭 요지부동하게 받게 될 것이라는 인과응보를 바로 알고 선견지명의 지혜로 살아야 된다고 분변하는 것입니다.

 

그래, 上濁下不淨(상탁하부정)라 하였습니다. 아시는데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볼품없이 구부러진 나무가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서 분기탱천으로 꾸짖기를 너는 어찌 그렇게 볼품없이 구부러졌느냐? 누구를.... 혹 네 어미를 닮아서 그런 것이냐, 아니면 네 외숙을 닮아서 그런 것이냐? 라고 물으니깐,

그 그림자 무어라 답을 했을까요? 上濁下不淨이라 君子之德風이라 했는데, 즉 당신을 닮아서 이 모양 이 꼴이요,

즉 부전자전(父傳子傳)이 아닙니까? 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지 즉 구원을 받아 성령의 인침을 받은 나이(연조)102030년 아니 40년이 되었는데도, 어찌 호리도 부전자전이 어디로 도망을 한 것일까요?

혹시 가짜 자녀가 아닐까요? 아마도 영적인 면에는 부전자전, 또는 상탁하부정이라는 진정한 의미가 유명무실한 것인가요? 여전히 마귀와 부전자전이 되어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 글 걸음이 약간 빗나겠는데 바로 잡아서....

얼마 전 TV에서 세상에서 절대 No touch! 해야 할 것이 3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 무엇 무엇인지 잘 아십니까?

1. 호랑이(사자)

2. 벌집

3. 자기 아버지의 퇴직금, 이라는 것입니다.

그래, 직장에서 30,40년 청춘을 모두 다 바치며, 오직 식솔들의 부양만을 위해서 상사의 눈치를 늘 살피며,

그래,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직서 내 던지고 싶은 북받쳐 오는 감정을, 그저 식솔의 부양 때문에 참고 또 인내하며,

그래 그 모진 스트레스 다 받으며 굳굳이 지켜온 그 한 많은 직장생활도 이제 너무 늙었다고 하여, 집에 가서 다 자란 애기나 보라고 신세대에게 물려주고 미련을 뒤로하고 정년을 맞게 되는데,

그래, 30,40년의 근속으로 퇴직금 3~4억원을 손에 들고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자식(子婦)과 갈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40년 이상의 피땀어린 퇴직금, 이제 노후생활로 좀 안정을 하고자 했으나,

이는 희망사항으로 굿바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 사랑하는 자식들, 당신의 눈에 넣어도 조금도 통증이 없을 것 같은 금지옥엽들, 이제 아버지의 피맺힌 퇴직금을 서로 많이 뺏아 가려고 자부(子婦)를 앞세워 최대의 몸부림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꼭 팥 바구니에 쥐가 왕래하 듯, 시부모집에서(평상시에는 왕래가 그렇게 뜸하더니) 기거하다 싶이 합니다.

그러면서 아부아첨 알랑방귀로 ~아버님, ”~어머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40년이상을 그렇게 충성하시던 직장을 그만 두시니, 많이 외롭고 소외된 기분이 아니세요?

 

그래, 이제 앞으로 저의가 잘 충성스럽게 봉양 해드릴테니! 저의 내외만 믿고 집에만 계시면 우울증이 올수도 있으니 건강하게 산책도 하시고, 외식도 하시고 친구, 친지집도 그리고 곳곳에 사는 자녀들 댁도 자주 가시고,

그래, 뭐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만 하시면 저의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과연 효부다운 위로를 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최고의 효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다수 외식(外飾)입니다. 겉치례입니다. 위선(僞善)입니다. 가장(假裝)입니다. 술수(術數)입니다. 가식(假飾)입니다. 시부(媤父)의 피땀어린 퇴직금을 가로 채 가기위한 독수리의 예리한 눈동자입니다.

 

그러나 시부는 너무나 마음이 좋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입니다, 과연 믿을 수 있는 효부라고 안심합니다.

고로, 낡은 헌집에 살지 말고 자기의 안방을 기꺼이 내어 드릴테니, 자기의 집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왠 꿈같은 효부입니까!

그래, 자부가 교회를 다녀 집사가 되더니 너무너무 많이 좋은 쪽으로 변했습니다. 너무나 보기 드문 선녀(善女)가 된 것입니다.

고로, 자기는 세상에서 복도 너무나 많다고 그 평생지기 친구들에게 자랑을 너무너무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짐 보따리 챙겨들고 아부아첨으로 알랑방귀 일삼는 자부 집에 들어가면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이 사람의 경험된 말이 아닙니다. 직접 체험자들의 뼈아픈 이구동성이라는 것입니다.

고로, 절대 퇴직금 들고 자부집에 가면, 이는 멀지 않아 쪽박들고 개미집에 구걸하는 신세가 되려면 하라는 것이요.

그래, 선택은 자유라, 그러나 그 선택에는 꼭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 고로 그 선택에 위한 결과는 선택의 여지가 추호도 없이 선택한 주인공이 꼭 절대 받아야 된다는 요지부동한 진리입니다.

 

고로, “아버님 어머님. 너무 저의와 멀리 계시면 저의가 사업의 관계로 너무 분주하여 소홀히 해드릴 것 같아 간청을 드리니, 퇴직금은 모두 정기 예금하시고 저의 집에 오셔서 손주들, 재롱도 보시고 하시면서 한 200년 사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저의의 절대 소원입니다. 저의도 이제 효부상 같은 것을 한번 수상(受賞)해 보고 싶습니다.

! 이제 고민입니다. 어찌 할꼬! 어찌 한담!

죽마고우 친구들에게 상의해도 이구동성으로 반대입니다. 절대 그 사업하는 아들집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로, 자녀들의 교통정리를 잘 못하면, 이는 자식들끼리 원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여 그 쥐꼬리만한 퇴직금 잘 정리하지 않으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출가한 여식도 절대 올케집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고민입니다. 그러나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자기의 자부는 예외일 것이라고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나 긍정이니 부정이니 이는 아무데나 소용되는 문구가 아니라. 예를 들자면 시속 120km의 전용차도의 중앙에 서서 나는 절대 교통사고를 당할 것인가! 아닌가! 할 때 긍정적인 사고면 무사 할거야.

그러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꼭 사고를 당한다고 한다면 이는 언어도단이라, 꼭 뱀이

들어있는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는 이는 긍정으로 생각해야지 꼭 부정으로 생각하니깐 뱀에게 물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는 식이라,

고로, 퇴직금을 송두리체 먹겠다는 고도의 술수임이 이구동성인데, 이는 부정적인 사고에서 발상되는 어리석음이라 하여, 주변의 권유를 절대 어기고 아첨스러운 자부집으로 잠자리 이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만약 퇴직금이 없는 두 늙은이라면 그 자부가 어찌 대우를 했을까요? 과연 자기의 안방을 내어주는 효부가 되었을까요? 어림도 없는 착각이요, 망상이라.

그런데 이런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센 세대는 신세대된 자부의 고도의 두뇌를 따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효부는 시부에게 산해진미된 진수성찬으로 대우를 하면서 상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퇴직금 토색 작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버님, 어멈님, 저의 집에 오셔서 기거하시니 어디 불편한 것이 무엇이 있으세요? 저의 늘 최선을 다 해드린다고 하면서도 요즘에 조금 애 아빠의 회사가 조금 원활하지 못해 소홀히 해드리게 된 것 같애요!

하여 조금만 기다리시면 회복이 될 것으로 믿으라 하였습니다. 고로 이번 당좌수표건만 결제를 막으면 만고강산이래요!

하여, 정말 본의 아니게 죄송하지만, 아버님이 그렇게 40년여동안 피어린 수고로 받으신 퇴직금을 단 몇 일만 빌려주시면, 흥쾌히 해결이 되어 참으로 우랑회사가 된데요.

그러나 만일 이번 당좌를 막지 못하면, 형사입건이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해서 제가 참으로 고민이예요? 라고 눈물을 보이며 간청하는 효()부라!

 

! 이런 경우에 이 글을 읽으시는 누구께선 어떻게 처신해야 지혜롭고 바른 답일까요? 세상에 이런 난감한 딜레마가 비일비재 부지기수라는 것입니다.

 

후회로다! 후회로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스피드를 내어 신속히 해도 때가 너무가 아니라 영원히 늦는다는 것,

그 후회는 영원히 하여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요. 내가 퇴직금을 잠시 렌트해 주지 않으면 당신의 금지옥엽이 형사입건도 감수해야만 된다는 효부인지! 악부(惡婦)인지! 의 간청을 어찌 무슨 지혜로 무슨 파워로 거절하며 부인(否認)하리요?

그러므로 퇴직금 3,4억이냐, 아니면 금지옥엽인 자식이냐, 어느 것을 선택해야만 지혜일까요? 누가 좀 알려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에 진정한 답은 이구동성으로 자식입니다. 금지옥엽입니다. 애지중지입니다. 그래서 퇴직금 그 40년의 피어린 수고로 인한 댓가로 얻어진 혈전(血錢)을 모두 자식의 사업 부도전야를 막기 위해 밀러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잠간만 잠시만 이라는.... 그래 말이 좋아 랜트이지, 부자간에 무슨 랜트란 어구가 필요할까요?

그래, 그 퇴직금 영영 굿바이 하는 것입니다. 한번 기우러진 그 사업. 자기의 능력이 못되는 사업,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어찌 얼마나 버티기로 지탱하리요?

그래, 이제 아버지도 그 효부도 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호화로운 주택도 은행담보로 경매 처리되어 이제 3,4억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그 효부 집에서 각각 헤여져야만 합니다.

! 이제 퇴직금 모두 효부가 먹었고, 베짱이 신세처럼 고령의 부부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 다른 자식들이 있어도 자기들에게는 퇴직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불평하며 그 잘난 효부집에 가라고 거부합니다. 천대합니다. 이것이 현시의 진정한 실정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긍정이고 무엇이 부정입니까? 옛말에 만사불여튼튼이요, 돌다리도 큰 망치로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하였습니다.

즉 아주 안전하다고 방심하지 말고, 만사불여튼튼 유비무환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믿는 도끼가 내 발등을 찍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도끼는 누워서도 소고기 안심도 잘 먹는다는 것입니다.

 

!, 이제 이 늙은이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만 생계를 유지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렇게 잘하던 효부에게 구걸스러운 손을 벌리니 거절하며, 잘 사는 딸집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말에 노름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사업한다고 퇴직금 달라는 자식은 아예 낳지도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자식들이 건재한 늙은 사람은 아무리 궁핍해도 나라에서도 구박의 대상이 됩니다. 절대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자식이 그 부모를 부양해야 마땅하다는 공식입니다.

차라리 이 사람처럼 그 잘난 효자 효부가 아예 없다면, 나라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 먹을 것을 주는데,

그래, 허울 좋은 유명무실한 자식이 있으면 구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고로 그런 원수 같은 자식은 차라리 없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공식입니다.

하여, 이는 자식이 아니라 원수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우려진 자식의 사업에 퇴직금 주기를 거부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요?

 

요즘, TV NEWS 에 아파트 분양금이 예치되어 있는데, 자식이 달라고 하기에 거부한 결과 자식이 무참히 부모를 죽였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인간존재입니다.

나는 또 예외입니까? 아니요, 오십보백보입니다.

그래, 맹자가 말하길.... 易地皆然이라고 그 처지, 그 형편이 되면 그 보다 더욱 큰 사건의 주인공도 될 수 있는 본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그 누구에게 내 손가락으로 지적하리요?

그러므로 선경지명이 있어야 되는 것. 이런 크고 울분이 터지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기에 정부에서 그 퇴직금을 보관해 주는 제도라 하여 퇴직금 모두 아예 연금화 해서, 남은여생 걱정 없이 먹고는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연금화 해놓고, 장수가 아닌 너무 빨리 이세를 떠나게 되면, 엄청 손해라는 주판 공식인 것입니다. 고로 퇴직 시 일시불로 전액을 손에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늙은이들이여! 하나만 생각하고 그 다음은 전여 무지한 자여!... 이는 모두가 욕심에서 비롯된 발상적인 수치라 분변하는 것입니다.

, 예를 들어 3,4억을 연금화해서 매월 150만원씩 두 내외 생전 시까지 지급 받게 되는 연금화라면,

적어도 30년 이상 굳건히 살아서 받아야만 손해가 아니라는 계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장수 할 수 있느냐 하는 계산이요.

인명은 재천이라 단 한치(5)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수명인데, 어찌 장담하며 연금화 하리요,

 

그래, 차라리 일시불로 받아 모두 은행에 장기 저축을 하면 더욱 복리까지 큰 이익이 된다는 짧고 미련한 수학입니다. 또한 자식들의 이구동성의 설득입니다.

이렇게 너무 짭짤한 주판알 굴리는 지혜로운 체 하다가, 자기가 파놓은 구덩이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이제 다 잃은 두 늙은이, 둥지 잃은 철새처럼, 차가운 밤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이집 저집 처마 밑을 전전긍긍해야 하는 애처로운 늙은 신세. 원수 같은 그 잘난 금지옥엽인 자식 때문일까요?!.

고로, 이세에서 건드리면 절대 안 되는 것은 호랑이. 벌집. 아버지의 퇴직금이라.

모두 자식에게 털린 이 늙은이는 그 인생(생명)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요양원이라....(현대판 고려장)

그래, 이제 쪽박 찬 늙고 병들은 부모. 송장냄새가 진동하는 부모를 절대 그 효()자는 자기의 집에서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 자기의 안방을 내어주지도 않는 것입니다. 나는 예외입니까?

왜요! 쪽박 찬 빈손인 부모는 그저 뒷방이나 골방도 감지덕지 늘 효부의 눈치를 살피며 유구백무언(有口百無言)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처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라도 퇴직금을 손에 들고 퇴직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연금화를 한다면 추하게 그 잘난 효부에게 용돈 구걸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식들의 신세가 도움이 없어도 먹고사는 데는 별로 걱정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제 효부에게 그 혈전(血錢)을 다 털리고 아~아 아무리 후회해도 주변의 평생지기 친구들에게도 도리어 손가락질의 부끄러운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고집을 부리더니 꼴 좋게 되었다고 불쌍하다고 대우를 할까요? 아니요!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면 괄시의 공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酒食兄弟 千個有, 急難之朋 一個無라 즉, 술친구 밥친구는 천명이 되어도, 자기가 급하고 어려움 당하면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친구는 단 한명도 드물다는 뜻으로....

고로 직장에 근속하시는 누구께서는 절대 퇴직금 손에 들고 퇴직하지 마시오, 간청하고 싶은 것입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너무너무 영원히 늦다니까요!

 

그래, 그 옛날 부모가 60세가 넘으면 먹거리 부족으로 그 자식은 그 부모를 지게에 실어다가 깊은 산골에,

또는 구덩이를 파고 버렸듯이 이제는 그 스타일이 바뀌어서 요양원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질병의 급수에 따라 나라에서 감병비를 지급하며, 그 일부는 가족이 지불하면 그만입니다.

더욱 장례식장까지 겸하고 있는 요양원도 많아 그냥 요양원에서 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센세대의 숙명적인 운명이며, 요지부동한 이세의 종말입니다.

그래, 인생이란 잘 아시는데로 그 종말이 참으로 서글픈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함인지 인간은 때가 되면 대부분 결혼하여 자녀를 출산 피땀 어린 수고로 양육하여 고등교육까지 시키면 이제 그 자식은 자립을 합니다.

 

그리고 그 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모는 안방에서 자부에게 건너방으로, 건너방에서 손자에게 뒷방으로, 뒷방에서 손녀에게 북풍받이 골방으로 밀리고 쫓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지부동한 순리입니다.

이에 만일 거역하면 그나마 일찍 요양원이나, 아니면 서울 대공원, 아니면 제주도에서 거리를 헤매게 될 수 있다는 것이요.

 

고로, 노세대는 유구백무언으로 일체 함구하고, 자부의 눈치를 잘 지혜롭게 살피며 조심조심 신중히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거주지와 퇴직금 한 3,4억원을 내 손에 꼭 쥐고 있다면..... 상황은 판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부의 효도를 받습니다. 서로 잘 하려고 가진 수고를 하는 것입니까?

왜일까요? 그것은 독자들께서 알아서 생각하시길... 고로 가진 것이 없으면 요양원에 버림이 되는 것도 효자 효부의 덕입니다.

하여, 요즘 요양원 건립이 인기 있는 상품이 되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많아져 눈을 부릅뜨고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자리도 효부의 도움이 없으면 자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센세대의 처참한 인생이라!.....

 

고로, 예로부터 무자식이 상팔자라 만고강산이라. 하여 이 사람은 무자식인 것이 천만다행이요, 이것도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라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축복이 아니라고 지금도 느끼고 있다오!!!!!!!

어찌 감사하리요. 고로 이 사람은 먹을거리가 혹 전무하다 해도, 염려할 것이 없는 주 원인은 하나님께서 이 나라 정부에게 먹을거리를 주라고 명령하게 되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그래, 좀 빈곤이 부끄럽기는 하겠지만 죄는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여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효자 효부가 인산인해이면 그 무엇해!

나라에서 기초생활 수급자의 자격도 방해가 되고, 거침이 되는 원수 같은 자식들인 것을....... 그런 자식을 그렇게 금지옥엽으로 당신의 눈에 넣어도 통증이 없을 거라고!...

고로? 천만이요, 망상입니다. 고로 어려서부터 자식들을 초달로 잘 양육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 절대 주님 앞에서도 호리의 도움이 될까요?

고로, 성경의 말씀을 많이 넣어주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도록 양육해야만 되지 않을까요? 나는 예외입니까? 성도의 가정은 예외입니까? 아니요 오십보백보라 거기서 거깁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이 두려워서 또한 성도란 자기의 체면 때문에 그런 것이지,

 

고로, 주님의 본질인 아가페적 사랑으로 공경이 아닌 형식으로 위선적인 겉치레로 효부인체 대우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마 모두는 아닐 것이나 고로 나는 예외가 되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하여 주님의 마음이 아니라면 모두가 자기의 체면유지를 위한 겉치레적인 위선(僞善)이 될 것입니다

이는 이 사람의 분변이 아니고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는 주님의 판단일 것입니다.

하여, 얼마나 자기 육신의 부모에게 불효를 하였으면 주님께서 옥중에 있는 바울사도를 통해서 말씀하시길.

 

자녀들아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또한 네 생애에 장수하리라. 즉 배불리 먹고 오래 오래 한 200년 살리라고 하셨을까요?<6:1~3>

 

고로, 부모에게 불효하니깐 배불리 먹고 한 200년 살지 못하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저 7~80년 살다가 죽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말씀은 한 획도 빠짐없이 문자적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 말씀은 그렇지만 설마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당신의 자녀에게 가혹하게 하실려구! 그냥 효도하라고 엄격히 하신 말씀일거야!

그러면, 그 말씀 그냥 책꼬지에서 잠자고 있는 이방서적이나 다른 점이 무엇이리요? 고로, 말씀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축복이 된다고 하는 해석입니다. 말씀을 보는데서 또는 듣는데서 그치고 무시하다가 그 언제인가는 그 말씀이 문자적으로 현실화 될 때는 대성통곡하는 비극에도 주님께서 불쌍히 보실까요?<1:20~33 65;12 66:4 7:13~16> 아닙니다. 참고한 말씀대로 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율법 613가지를 대표(축소)10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이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20;12>

 

고로, 외식. 위선. 겉치레. 체면유지 등은 진실(眞實)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표리부동(表裏同)이 아닌 표리일치(表裏一致)가 절대 진실이라는 답이 아닐까요?

하여 나는 진실한 인생의 가치로 살고 이는 것인가! 자아성찰해 보아야 되지 않을까요?

표리부동한 즉 겉과 속이 다른 인생으로 지나온 나의 생애가 몇 %일까요?

그냥 내게 불익이 되는 듯 분변되면 아닌 척, 하는 것입니다. 척이나 체. 병은 결코 진실일 수 없을 것입니다,

고로 진실이란 악인이냐, 선인이냐, 죄인이냐, 의인이냐, 또는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냐, 마귀의 자녀인 비성도냐, 를 불문할 것입니다.

즉 표리가 일치하느냐, 아니면 표리가 부동()하느냐, 를 묻고 있는 것이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지, 성도는 진실하고 비성도는 사실(詐實)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로 천인공노, 할 살인 죄인이라 할지라도 진실할 수 있고, 부처의 가운데 토막도 비진실할 수 있다는 답이 아닐까요?

그러나 속은 보이지 않아 전여 알 수 없어 겉만 보고 판단 할 수 밖에 없으나 속담에도 열길의 물속은 알 수 있으나 한 길의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다 하였고,

명심보감에서도 海枯終見底 人死知心.(水深可知 人心難知)이라 하였으니, 이는 아시는데로 바다는 그 물이 마르면 마침내 바닥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일거수일투족, 뿐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 하시니.<삼상 16:7 139:1~4>

어찌 내 눈앞에 보이는 만상은 혹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는 호리라도 속일 수 없이 보고 계시다는 것이요, 하여 신전의식(神前意識)의 정신으로 인생을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가치 있는 인생이란 그 무엇일까요? 즉 어떻게 처신해야만 우주보다 귀한 생명의 가치를 보유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 자기만을 생각하는 인생은 그 가치가 전무하고, 반대로 자기는 부인(否認)하고 이웃을 위하여 사는 인생은 그 가치가 우주보다 귀하다고 하시는 말씀으로 꼭 하나님께서 보응(報應)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닐까요?<16:24~28>

고로, 잘못된 인생의 삶은 그 생명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아니고, 쓰레기 더미에 기어 다니는 변기통에서 금방 외출한 구더기 인생이 될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25:4~6>

 

~아 또 성도된 나는 예외일까요? 예외가 될 수 없기에 그 토록 두꺼운 66권의 하나님 말씀이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해서 계속 그 부모가 자기의 자식에게 효자가 되라고 가르쳐 주시듯 가르쳐 주시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아니라면 구원에 관한 말씀만 요긴했다면, 66권이 아닌 단권이면 족하리라 분변되는 것입니다.

고로 명색이 신분상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라면, 이방세인 처럼 인생을 살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각 선지자 또는 사도들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계속 가르쳐 주시길 위해서 66권의 성경이 필요하시다고 하신 것이라 분변합니다.

 

그런데 평생 자기의 곁에 성경을 두고 그 말씀들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나 마치 습관적으로 벽에 붙어 있는 거울에 자기의 얼굴을 비추어 보고 그냥 지나치듯 우이독경(牛耳讀經)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되고 있는 것이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맞는데 불효자라는 것입니다.

고로 그 자녀에 그 아비라. 는 비평을 받게 되는 것 성도란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더러힘)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말입니까? 이는 주님을 전여 모르는 이방세인한테서 말입니다.

 

너희(성도)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冒瀆)을 받게 하는도다.<2:24>

 

그래, 너희로 즉 하나님의 자녀라는 성도로 인하여 라는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성호(聖號)가 추하고 더럽게 되는 것은, 마귀의 자녀인 이방인 때문이 절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가 칭하는 성도 때문이라고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한탄하심이 아닐까요?

그래, 불량한 자식이 그 인자(仁慈)하신 자기의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찌 그런 인생된 생명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다 하겠습니까?

그래, 어찌 신세대의 가치가 센세대보다 낫다고 하리요, 동류로다 전여 무가치한 돼지만도 못한 구더기인 생이라 고집하고 싶습니다.

그래, 맑은 피가 튀기는 청년이라고 해도, 그 가치를 못하면 어찌 가치가 있다 하리요?

고로, 되물림이나 대물림은 내세에서만 꼭 받게 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여생(餘生)인 이세의 자기 인생에서 꼭 절대적으로 어김없이 피눈물 겹게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고로,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리요? 콩을 심으면 꼭 콩을 거두게 되는데, 파종의 콩의 양보다 수백 배로 꼭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는 요지부동한 창조적인 자연의 법칙입니다. 옛말에도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도록 하면, 반드시 나의 눈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하였고,

호세아 선지자는.....

 

저희가 바람을 심으면 광풍(狂風)을 거둘 것이라.<8:7>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10:13>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라.<3:25>

 

그래, 상기의 말씀은 이방세인에게 하신말씀이 절대 아니요,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골로새 성도들에게 전한 서신내용입니다.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죄인과 악인이리요.<11:31>

 

그래, 상기의 말씀에서 잠언기자는 꼭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자기의 생전에 꼭 보응을 받는다고 주님께서는 잠언 기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래, 죄인만이 아니고 의인이 된 성도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고로, 죄인과 악인이 따로 정해진 것입니까? 아니요 잘못된 인생은 그가 혹 성도일지라도 어찌 예외인 의인이라 하리요? 고로 악인과 동류의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닐까요?

 

고로, 예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여 인생의 가치란 그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요?

고로, 그 자식을 보면 그 부모의 됨됨이가 어떠한 것을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왜요? 그 부모의 짓거리를 가장 근()거리에서 다 보고 느끼고 배우게 되는 것이 자식이라 분변한다면,

고로, 늙고 병들면 그냥 요양원에 버려지게 되는 주 원인은, 그 동기가 오직 자식만의 절대적인 탓일까요? 잘못일까요?

 

아니요! 부모인 내가 원인된 솔선수범의 인생이 되지 못했기에 즉 부모인 내가 자식에게 과잉보호 등으로 잘못 교육한 축복된 덕이라 감수하고 기꺼이 요양원에 가야만 되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요?

그런데 불효자식이라고 누워서 천정에 더럽다고 침을 뱉는 짓거리로 그 책임을 전가시키고 핑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늙고 병들은 부모님을 따스한 안방에서 최선의 효도로 모시고 극진한 대우를 해드린다면..... 그 모범됨을 나의 자식들이 가장 근거리에서 깊이 지켜보고 미음에 새긴다는 결론입니다 이는 말이 또는 글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훗날 내가 자식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요양원에 들어가겠다고 자청해도 절대 가로 막고 절대 안 된다고 부모님이 조부모님에게 성실히 효도 하신 것을 내가 어찌 잊으리요!

고로, 절대 요양원에 가시면 안 된다고 하는 자식의 간청에 어찌 자식을 잘 양육한 보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역으로 자식은 꼭 부모를 모셔야 된다고 강요하면,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러면 아빠 엄마는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를 어떻게 모셨나요?

제가 어려서 지켜본 바로는 그렇게 요양원에 가시기 싫어서 눈물로 통사정을 하며, 그저 골방이라도 좋으니깐,

그저 집에만 있게 해 달라고 고기반찬 기대하지 않을테니, 제발 손주들의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재미를 삼아 살다가 죽게 해달라고,

그렇게 그렇게 간청을 하시는데도, 엄마 아빠는 어떻게 처신하셨나요?

고로, 근묵자흑이요. 上淸水之下淸水. 종두득두요. 인과응보라. 는 말씀을 너무나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는 묵시적인 질문으로 몰인정의 대우를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이 사람의 분변적인 고집입니다.

 

그러므로 멀지 않은 훗날 내가 늙고 병 깊은 부모에게 효도한 것처럼의 이상의 효도를 받게 된다는 답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나의 부모님은 주저 없이 마음에 호리의 꺼림 없이, 지체 없이 요양원에 보내면서도..... 바로 내일인 훗날 나는 꼭 나의 자녀들이 요양원의 근처에도 보내지 않고, 자기의 따스한 안방에서 잘잘 섬길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더더욱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악몽에서 속히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바로 내일을 바라보는 좌견천리 선견지명으로 인생을 살아야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고로, 인과응보라. 그리고 종두득두라. 상탁하부정이라 이런 명언들이 어찌 유명무실하게 그냥 생을 다할까요? 아니요 반드시 다 문자적으로 원칙적으로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고로, 누구의 눈에서 눈물이 나도록 한다면... 반드시 자기의 눈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격언 왜 피눈물이 나게 될까요?

고로, 이를 어찌 무시하며 설마하며 수수방관하리요? 반드시 꼭 이세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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