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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부른다 [0]

고성욱(koh***) 2017-10-07 22: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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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기간 많은 영화를 봤다. 그중 재미있게 본 영화가 그녀가 부른다(박은형 감독, 2013)’와 봄날은 간다(허진호 감독,2001)’였다. 후자가 좀 더 사람들의 호평을 받은 듯했지만 나는 전자가 좀 더 재미있었다.

 

봄날은 간다는 남녀가 만나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진부한 스토리지만 그래도 볼 만했다는 건 순전히 감독의 역량 때문일 것이고 그것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일 것이다. 소설이었다면 그런 스토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부른다는 스토리가 특별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젊은 여성으로 지방 소도시의 극장 매표원이다. 그녀는 19금 영화를 보러 오는 학생들을 단호하게 내쫓는 정석을 구가하지만 사랑하지도 않는 유부남과 모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탈도 보여준다. 그런 그녀에 대해 극장 앞 전자대리점 직원인 젊은 청년이 관심을 보인다.

 

평범한 여성이라면 나이 든 유부남보다 성실해 보이는 젊은 청년에게 눈길이 갈 텐데 그녀는 자기 주변을 맴도는 그 청년에게 만나는 사람이 있으니 관심을 끊으라고 차겁게 말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청년은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영화의 전반부는 그런 장면의 연속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여자의 과거가 드러난다. 어느날 그 여자가 출근하지 않았는데 모친의 사망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청년이 장례식장을 찾아간다. 거기서 그녀가 살아온 얘기를 듣는다. 사망한 모친은생모가 아니고 자기는 아빠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이며 생모는 자기를 낳고 자살했다는 얘기를. 이번에 돌아가신 모친이 자기를 친딸처럼 키웠다는 얘기도.

 

그후 그녀는 유부남과 헤어진다. 자신이 사랑하지도 않는 유부남을 만난 건 모친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는데 모친이 사망하면서 흥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거기서 영화를 보는 사람은 윤리와 본능을 접하게 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을 친딸처럼 키운 여성의 윤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딸이 자신의 뿌리에 집착하는 본능이다.

 

하지만 그녀 또한 본능에서 윤리로 나아간다. 자신을 키우고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을 챙겨준 모친이 죽자 허전함이 물밀듯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청년에게 망가진 TV를 고치듯 자신을 좀 고쳐달라고 주문한다. 그건 일종의 프로포즈였을 터인데 청년이 그녀에게 싫다고 말한다. 지금 그대로의 그녀가 좋다는 것이고 고치면 오히려 신비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매표소 안에서 따분해 하던 그녀가 라디오에서 가수 김종찬의 노래 산다는 것은이 흘러나오자 따라 부르게 되고 그녀의 노래는 매표소 밖과 소통하는 마이크를 통해 청년과 극장 직원들, 그리고 동네사람들의 귀로 흘러들어 간다. 그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산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한 거지였다.

 

영화를 본 후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여주인공의 과거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프랑스영화였다면 아마도 뿌리와 성장과정이 평범했던 여성의 독특한 일탈을 묘사했을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여성의 일탈은 심리학의 범주로 보게 되지만 평범한 여성의 일탈은 철학이나 예술의 범주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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