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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전용과 '문자 국수주의(文字 國粹主義) [7]

윤영노(rho***) 2017-10-06 18:46:04
크게 | 작게 조회 1486 | 스크랩 0 | 찬성 46 | 반대 4


 며칠 있으면 한글날이다. 그날이 되면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동소이한 기사들이 도하 각 일간지를 장식할 것이다. 
 '.. 한글은 과학적으로 만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다. 세종대왕의 숭고한 뜻을 기리어 잘 보존해야 한다.'
매년 비슷한 내용이기 때문에 스크랩해 뒀다가 다음 해 기사로 올려도 '신제품'으로 둔갑시키는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 예찬에 반하는 이견이나 반론을 제기하는 기사를 실었다간 해당 신문사는 한글전용 주의자들의 맹공을  면치 못 할 것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자 가운데 구체적인 필요성을 갖고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만든 문자라는 점과 그것을 만든 사람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특별한 문자임엔 틀림없다. 만약 세종대왕께서 노벨상이 생긴 이후에 한글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수한 문자라는 건 인정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모든 발음을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는 과학적인 문자'라는 것은 과장이 좀 섞인 것 같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문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문자가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들이 아라비아문자보다 한글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할리는 없다. 이 분야를 전공하는 극소수의 전문가들이 전 세계 문자를 객관적으로 비교한 결과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라는 평가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역시 주관적이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평가라고 보긴 힘들 것이다. 문자의 특성상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내린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고, 이는 '세계 최고'를 유달리 좋아하는 우리의 일방적인 주장일지도 모른다.  
 
한글의 우수성을 자랑하면서 내세우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 세상 모든 언어의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장점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외국인이 말하는 것을 즉석에서 자국의 문자로 받아쓴다는 것은 한자나 히라카나의 특성상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글은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일진 모르겠다. 
 

 
로마자 'J'의 발음은 언어권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영어권은 'ㅈ', 독일어권을 비롯한 非 영어권은 'ㅇ'으로 발음한다"라며 확실하게 구분한다. 예를 들어 'Julius'를 영어론 쥴리우스, 독일어론 율리우스라는 식으로..  . 그러나 그 사람들의 발음을 자세히 들어보면 'ㅈ'도'ㅇ'도 아닌 그 중간의 발음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우리 귀에 영어권은 'ㅈ'쪽으로, 독일어권은 'ㅇ'쪽으로 들렸기 때문에 우리가 임의로 구분했을 개연성이 높다. 아마 정확하겐 'ㅈ'도 'ㅇ'도 아닌 그 중간 발음이며, 그 발음은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본어쯤은 한글로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예를 들어 일본어의 'だが'를 단정적으로 '다까'로 표기하지만 일본인의 실제 발음은 '당아'에 가깝고, 그 '당아'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정확한 것은 한글로는 '정확하게 표기할 수 없다'라는 것만 정확하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속된 말로 '비스무리'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문자에 비해 상대적 우위가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은 과장이 좀 지나친 것 같다.  
 
한글의 최대 단점은 용어를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의 대부분은 한자를 사용하던 시대에 만든 한자어이거나 외래어다. 그런데 한글 전용 시대인 요즘에도 새로운 용어는 거의 모두 한자어로 되어 있다. 한글만으론 용어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반증이다.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한 후 '이 말은 이러이러한 뜻이다'라는 설명이나 별도의 용어 사전이 없다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말이 태반이다. 한자 병용이 정착되었다면 이런 번거로움은 당연히 없어진다.

사용빈도가 많은 한자어는 한자의 도움 없이도 해독이 가능하지만 사용빈도가 낮은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면 한자 가능 여부 막론하고 꼼짝없이 문맹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한글 전용을 하려면 모든 한자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비행기를 '날틀' 하는 식으로. 북한도 한글 전용 정책을 시행하면서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수행한 흔적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요금 지불하는 곳을 '돈 무는 곳' 제조원을 '만든 곳' 판매원을 '파는 곳' 화물선을 '짐 배'하는 식으로. 반면에 우린 한자어를 단순히 한글로 표기하는 것으로 그쳤기 때문에 혼란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顚倒危險'을 '전도 위험'이라고 써놓는 식이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뜻을 알 수 없고, 한글로 써놨기 때문에 한자를 아는 사람도 설명을 듣지 않곤 그 뜻을 알 수 없다. 그 순간 모두가 문맹자가 될 수밖에 없고, 이 방식을 적용하면 우리의 문맹률은 50% 이상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모든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바에는 1,800자 정도의 한자를 익히게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중고교 과정에서 배우는 '쓸데없는 수학' 시간을  '쓸데 있는 한자'시간으로 대체하고,  수능시험에 수학 점수를 줄이고 한자 점수를 반영하면 1,800자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다고 본다. 
 
 세계 최강 미국이 사용하는 문자는 미국 고유의 문자가 아니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또한 영국의 국어인 영어다. 미국은 고유의 문자도, 고유의 언어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지금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영어 단어 가운데 45%는 외래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영어로 알고 있는 INVOICE, TAX 등도 원래는 이슬람 쪽의 언어라고 한다. 영국은 누가 만든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자신들에게 유용하면 누가 만들었건 개의치 않고 자기들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국의 방식을 승계한 미국이 현재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처럼 제아무리 쓸모가 있어도 '일제 잔재'이기 때문에, 중국의 문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식의 편협한 생각을 영국인이 갖고 있었다면 그들은 브리튼섬에서 단 한 발짝도 밖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한 취지는 한자가 우리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글로 대체하겠다는 국수주의적 발상이라기 보다 
한자가 배우기 어려워 쉽게 문자라도 터득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실용적인 발상이었을 것이다. 즉 한자의 단점인 '배우기 어려움'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한글 창제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한글전용이 목적이었다면 한글 창제 이후 국가 차원에서 한글 전용의 노력이 이루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세종대왕 당대는 물론이고 그 후 500여 년 동안 한글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킨 흔적도 없고, 그 시기에 작성된 모든 국서는 오로지 한자로만 적혀있다. 이처럼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취지는 위에 말했듯 한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문자 가운데 완벽한 것은 없다고 보며, 그런 점에서 '가장 훌륭한' 한글도 예외일 순 없다. 한자와 한글은 각각 단점과 장점을 갖고 있다. 한글의 단점을 한자의 장점으로 보완하고, 한자의 단점을 한글의 장점으로 보완하는 것이 한자 병용의 취지이다. 두 개의 문자를 상용하는 나라는 지구 상에 한국과 일본으로 보이는데, 일본은 한자 병용의 장점을 꿰뚫고 더욱더 다듬고 발전시키고 있는데 비해 우린 천혜의 장점을 스스로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글 전용론자들은 한자의 단점과 한글의 장점만 부각시키는 면이 있다. 한글과 한자는 어디까지나 상호보완관계이며, 세종대왕의 균형적인 성지(聖旨)에도 부합된다. 현재 글로벌 문자로 정착되어 있는 로마자를 러시아와 그리스를 제외한 유럽의 모든 나라가 공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동양의 로마자'나 다를 바 없다. 한자권에 속한 우리가 '억지로' 한자권에서 이탈하려는 것이 지혜로운 생각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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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

오병규 (ss****) 2017-10-06 19:18:46 | 공감 3
제 견해도 위의 박천복 선생님의 견해와 비슷합니다. 한글을 폄하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한글이 우수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소리 글로서 의미가 크게 없습니다. 중국을 뱀 보다 싫어하지만 한글은 6070 한문漢文에서 그 뜻을 찾아야 합니다. 즉 한자와 병기 하지 않으면 맥이 통하지 않습니다. 한글이 지구촌 최고의 글이라고 하는 것은 그 놈의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만들어 낸 자화자찬론입니다. 영어를 16년 배워도 제대로 구사 못하는 외국어 비주류권 민족의 애환이지요.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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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복(yor****) 2017-10-06 19:07:22 | 공감 3
OECD회원국가중 일본인의 문장해독능력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그건 가나와 한자의 병행에서 오는 힘이라고 합니다.우리국민의 문장해독능력이 바닥권인것은 한글전용이 가져온 폐단이라고 할수있습니다.한글로 표기된 한자어의 의미를 모르니 문장이해력이 떨어질수밖에 없는것이죠.한글과 한자의 병용은 현실적인 요청이기 때문에 속히 시행하는게 맞습니다.아주 논리정연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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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규(ss****) 2017-10-06 19:18:46 | 공감 3
제 견해도 위의 박천복 선생님의 견해와 비슷합니다. 한글을 폄하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한글이 우수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소리 글로서 의미가 크게 없습니다. 중국을 뱀 보다 싫어하지만 한글은 6070 한문漢文에서 그 뜻을 찾아야 합니다. 즉 한자와 병기 하지 않으면 맥이 통하지 않습니다. 한글이 지구촌 최고의 글이라고 하는 것은 그 놈의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만들어 낸 자화자찬론입니다. 영어를 16년 배워도 제대로 구사 못하는 외국어 비주류권 민족의 애환이지요.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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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노(rho****) 2017-10-07 11:02:55 | 공감 2
박천복 선생님이 제 생각을 함축적으로 잘 대변해 주셨습니다. 적극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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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노(rho****) 2017-10-07 11:07:25 | 공감 0
오 선배님 건강하시지요? 본 공간에서 오 선배님의 글을 읽는 것도 비중있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ㅎㅎ 건필하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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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은(dek****) 2017-10-10 11:04:08 | 공감 0
한자 병용을 주장하는 글조차도 한글 전용으로 써야 이해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미 한자 병용을 주장해서 시간을 거슬러올라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은 한글 전용에 한자 병기면 충분하다. 시대의 흐름을 무슨 수로 거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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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길(soong****) 2017-10-10 13:37:57 | 공감 0
학자를 제외하고 한자 깨나 배웠다는 사람들이 다 물러 가셔야 어지러운 말들이 잠들 것이다. 국어가 한자어에서 근원한 것이 많다고 해도 한자를 병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늘 그 병용 때문에 국어가 더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뒷구멍 수단이 있는 것. 신세대들은 그것을 과감히 차버리고 새로운 용어들을 만들어 어지럽게 많이 사용하고 있지요. 인터넷이 그들의 놀이터인데 왜 그렇게 되냐고 하면 국어학자들이 필요한 국어 단어를 제때에 만들어 공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생적으로 생기는 단어는 품위가 좀 낮기는 하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좀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할 일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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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길(soong****) 2017-10-10 13:47:21 | 공감 0
현재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국어를 얼마나 잘 쓰고 있으며 신문에는 얼마나 한글 띄어 쓰기가 잘 되고 있는지 아십니까? 한글 문법과 띄어 쓰기 시험을 보면 모두 형편 없을 것입니다. tv 프로그램 하나 보시면 평범한 글 맞게 쓰는 것이 장학 퀴즈 수준입니다. 이것은 한글 맞춤법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글 연구하는 분들 제발 정신 차리고 제대로 만들고 고치시기를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세종이 왜 한글을 만들었다고 했는지 잘 되새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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