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한글날은 훈민정음 창제 563주년이다.
이 날을 맞이하여 광화문 광장에서는 조선 제4대 세종(世宗 1418-1450)의 동상이 제막되었다. 광화문에 우뚝 솟은 동상은 근엄하고 온화한 인상을 표현하려는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근심스러운 표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세종은 조선의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추대 받아 왔지만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 세우고 세종시로 명명함으로써 충청권의 표를 얻으려는 선거 전략으로 활용됐고, 따라서 정치쟁점으로 부각되기에 이르게 되었다.
노무현 후보가 충청권의 득표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고, 2003년 12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세종시법)은 국회를 통과했으나 다음해 7월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헌법소원이 제기되었으며 10월에는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은 헌법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라고 판시하여 위헌 판결이 내려졌고, 대선공약에 집착한 노무현 정부는 2005년 행정부처의 일부(9부 2처 2청)를 이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 재차 통과시키고, 2007년 7월 행복도시 기공식을 거행하여 2300만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5조원 이상을 투입하여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이 심기가 편치 않은 것은 세종시 문제가 정치쟁점화 되어 여야 간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내에서도 파벌의 이해득실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니 나라가 한시도 편할 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종시 문제는 정부부처의 이전을 통해 국토의 균형발전을 가져온다는 허구에 찬 정략적 발상에서 시작되었으므로 객관적 타당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균형발전을 위한다면 세종시에 9개 부처를 집중적으로 이전할 것이 아니라 도청소재지에 1개 부처씩 안배하면 더욱 효과적이 아니겠느냐는 물음에 대하여 누구나 수긍하는 객관적인 답변을 내 놓기가 궁색하다.
정부부처의 분산으로 야기되는 중앙정부의 비효율성과 국가의 중심축으로서의 수도권 위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 올 세종시 문제는 이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세종시 문제는 세종대왕의 정치사상과 통치철학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세종의 정치사상은 민본주의요, 통치철학은 문화 창달에 두었다. 백성들이 문자가 없어 의사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딱한 사정을 어여삐 여겨 훈민정음(세종 25년, 1443)을 창제하였고 예치(禮治)를 숭상하여 삼강행실도,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을 편찬했고, 문명의 개화를 위해 물시계, 해시계, 측우기 등을 제작하였다. 측우기는 이탈리아 카스텔리가 1639년에 만든 측우기보다 200년이나 앞서 만들어 졌으며 강우량의 정확도는 현재 세계기상기구(WMO)가 정한 측정오차에도 합격할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한편 세종은 백성이 편히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남해안을 침탈하는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對馬島)를 이종무(李從茂)로 하여금 정벌(1419)케 하였는데 이 장군은 도망하는 도주(島主) 소오사다모리(宗貞盛)을 일본 본토까지 추격하여 항복을 받고 돌아오기도 했다.
만주지역 여진족의 출몰로 고통 받는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김종서(金宗瑞)로 하여금 함길도(지금의 함경도) 일대에 육진(六鎭)을 개척케 하여 두만강까지 경계를 이루게 하였다. 세종의 북방 개척은 농토가 없는 농민에게 새로운 생활터전을 마련해 주고 국력을 강화하려는데 뜻이 있었다.
세종의 재임기간 32년은 15세기 중반 나라의 문화와 위상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는데 그 힘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오는 우리의 고유문화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세종시 문제를 풀기 위한 키워드가 문화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종시는 문화의 도시로 만들면 된다.
21세기 세계 선진국 대열에서 앞장서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를 세계화하는데서 길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한류문화는 한글과 한복, 그리고 한식과 한옥이 그 중심에 있으며 세계를 선도하는 예술과 스포츠분야에서도 탁월한 인재가 속출하고 있다.
한글의 세계화는 인도네시아 부톤섬 찌아찌아족의 한글 보급으로 시작되고 있다. 지구상에 5600여 종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이 중 문자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언어는 40여 종에 불과하고 나머지 언어를 문자로 표기하는데 최적수단이 한글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11일 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글이 한자와 알파펫에 대항해 해외 진출을 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미 유네스코에서는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문명 퇴치에 공로가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유네스코 세종대왕상(UNECO King Sejong Prize)을 수여하고 있다.
한복과 한식 그리고 한옥의 과학성과 우수성은 이미 세계에 널리 공인된 사실이며, 세계화를 위한 체계적인 연구와 보급만이 현실문제로 남아 있다. 관련 연구소를 세종시에 유치하고 국내외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기관을 설치 운영하면 한류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새로운 기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하는 문화분야의 인재들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업무도 세종시가 맡아야 할 분야이다.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 선수들의 기량은 세계적이나 지도자와 시설면에서 열악하기 짝이 없다. 쇼트트랙에서 세계의 정상을 차지한지가 오래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시설이 부족하다든지 야구가 세계를 재패(올림픽 금메달, WBC 준우승)하지만 돔구장 하나 없으며, 피겨의 여왕은 있으나 타국으로 전전하며 지도자를 찾아 연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남녀 골퍼들이 세계정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골프장이 몇 개나 있으며 과연 그들이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지도 자문해 보아야 한다.
나라를 등에 업고 세계를 달리는 국민들에 대하여 이제 국가는 답해야 한다. 최악의 조건하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그들에게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지도자와 시설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는 불로소득을 얻은 셈이다. 국가는 이 모든 문제를 세종시에서 해결해야 한다. 세종시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문화의 진원지가 되고 글로벌 인재를 배출하면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명품 문화도시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용안(龍顔)이 우리 모두에게 밝게 웃음 짓는 환한 모습으로 닥아 올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