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우리는 예정대로 일출봉 근처의 성산포구에 있는 "쏠래 민박집"에
다았다. 왕복 8 만원이 좀 안되는 저가 항공으로 김포를 이륙한지 50분만에
제주 공항에 도착, 택시를 타고 성산포구로 온 것이다. 민박집 문은 열려 있
지만 주인이 없다. 역시 문을 열고 산다는 제주가 맞는 모양이다. 우리는 문
간에 놓인 감귤 더미로 눈이 가서 까먹기 시작했다. 손님 접대용이라는 생각
에서...
주인이 옥상에서 내려와 우리를 맞았다. 도착 당일 제 1 코스를 쉼 없이 하기
로 되었으니 우리는 짐이 정리되자 중무장으로 하고 민박집을 떠났다. 날씨
가 사나워진다. 검은 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피는듯 하더니 눈싸라기가 흩뿌
린다. 바람은 세차게 몰아치고 감기 공포에 젖은 일행들은 모두 얼굴을 싸
매기 여념이 없다. 강풍과 눈보라를 맞으며 일출봉 주변을 맴돌다 도중에 단
축하고 돌아왔다. 올래길은 이 싯점에도 안내 간판이 전무하다. 다만 길바닥
아니면 측면 담벼락이던 나무 밑둥이던 간에 반드시 화살표 표기가 볼품없
이 그려져 있다. 가는 길은 청색으로 오는 길은 황색으로 표시한다. 또한 청
황색의 리본이 동시에 드리워져 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은 이넘의 화살표
모양이 가관이다. 한문자로 들입자에 수평선을 그어서 표시한 것이다. 그러
니까 화살표 머리 부분의 아귀가 안맞고 빗나간 형국이다. 길을 걸으며 저
표식은 그린 사람의 필적 버릇에서 오는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어딘가 정식
표지판 표시에도 그렇게 되었으며 또한 공중 화장실의 올래길 표식에도 그
랬다. 이것도 일종의 올래 여행상품의 특허 상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언제나 길이 애매하면 사방을 두리번거려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 내야하는
이 표식이 이내 정이 든다. 어떤 표식은 화살표 꼬리를 올챙이 수영하며 흔
드는 꼬리 모양 꼽불꼬불 그린 것도 적당이 섞여 있다. 그린 사람이 두사람
인가? 궁금해 진다.
65세 늙은 것들이 11명씩이나 모여 카메라든 게리라도 돌변한 것이다. 아인
슈타인이 정의한 여행객 말이다. 이 올래를 계획한 것은 몇달 전이었다.
4박 5일에 40만원의 경비에 합의하고 비행기는 싼 비행기를 타기로 미리 선
착순 예약에 성공한 것이다. 처음에는 하도 싸서 러시아에서 임차한 뚜보레
프(Tubolev) 란 낡은 여객기가 아닌가 해서 되묻기도 했지만 엄연한 미국 보
잉사제 737-800 기종이었다. 탑승전 여행 보험에 들려고 두리번 거렸지만 국
내선에는 그런 코너가 없다. 하긴 늙은 것들 사고로 죽어 봐야 보험 보상 최
고가는 1 억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때 정동영은 우리를 보고 애나 보라고
했다. 지금 그 작자도 환갑이 되어 간다. 머 그냥 갔다오는 거지 뭐 하며 죄다
보험을 무시하고 간 것이다. 1-5 코스까지 하기로 되어있다. 둘째날 코스는
역시 일출봉을 멀리 바라보며 뱅뱅도는 코스로서 아기자기한 외움길 돌림길
을 걸어다녔다.
셋째날은 원정에 기권을 해야 했다. 출발전에 코감기 기운이 있어서 이비인
후과 치료를 완벽하게 받았었지만 첫날의 무리가 재발을 자초한 것인가? 두
째날 밤이 되자 호읍 곤란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도저히 누울 수가 없
다. 2일 1실로 잠을 자는데 롬메이트의 눈치가 보이고 누을 수가 없으니 자정
부터 이틋날 새벽 7시까지 하숙집 계단에 매달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었으니
제 3 코스는 포기해야 했다. 대신 제주 시내 이비인후과를 찾아 나섰다. 버스
로는 1시간 20 분에 3천원의 여비가 드는데 택시로는 3만원을 주어야 한다.
택시 요금이 과한 것 같아 악으로 버스로 갔다.
버스 기사는 제주시내에 있는 이비인후과 밀집 거리에 정확히 내려주었다. 버
스에 타고 가는 동안 눈이 저절로 감기지만 이내 호흡이 막혀 화들짝 잠이 깨
곤한다. 3일치 약을 타고 병원문을 나서니 허기가 엄습한다. 그간 제주 관광을
여러번 했었지만 그저 여행사 가이드에 이끌려 피바가가지 코스만 돌다보니
스스로 걸어보는 제주 시내가 아주 흥미롭다.
우선 깨끗하고 이국적인 가로수에 취해 EXOTIC이란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온
다.
길 가는 제주 시민에게 물었다. 저 가로수 나무 이름이 무었이냐고. 그러나 유
감스럽게도 10 사람중 단 한 사람도 안다는 사람이 없다. 더군다나 길가에서
심지어 화원을 하는 사람들도 모른다니 누가 알겠는가? 한심한 일이 아닌가?
제주는 4.3 폭동의 역사적 아픔을 가진 지역이다. 사람들이 이러할 진대 왜곡된
역사적 가면으로 저 4.3 붉은 폭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했으니 오죽하랴!
그 가로수는 대부분이 만리향이라는 나무라고 했다. 그리고 사이 사이 해묵은
큰 키의 동백나무가 가로수를 이룬다.
이 만리향이란 나무는 얼핏보면 저 호주의 Gum Tree 즉 Eucalyptus 란 나무와
흡사하다. 코알라의 먹이가 되기도 하지만 유성이 많아 대형 삼림 화재기 일
면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이 번지기도 한다.
네번째 코스는 표선면 해수욕장을 기점으로 올래가 시작되는데 조금 걷다 보
니 해비치 리조트가 나온다. 한적한 도로, 종려 나무와 만리향 나무가 적당
히 섞여 보이는 수림은 영락 없는 South Melbourne 의 바닷길을 연상케 한다.
잠시 내가 호주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엄습해 온다. 맑은 공기, 탁트인
바다와 울창한 숲, 온화한 날씨, 그리고 상하로 완만한 파도 처럼 굽이처 흐르
는 도로가 그렇다. 게다가 바닷가에 지어논 팬션과 개인 주택도 서구적이어서
그런 느낌에 일조를 한다. 이런 상황을 미리 알았더러면 지난 세월에 자전거
타겠다고 호주까지 내려가던 시절이 후회롭게 느껴진다. 대한민국 최고의 자
전거 도로라면 바로 이곳 표선면에서 서귀포에 이르는 해안 도로가 아닐까?
바닷가에 바싹 붙어 지어논 팬션 이름이 이채롭다. 한 집은 Tirol 이라고 명칭
을 붙였다. 그러나 알고보면 어색한 명칭이다. 티롤은 내륙의 오스트리아 지
명이다. 바닷가 집을 티롤이라니? 또 그 엽집은 명칭이 스웨떼 라고 적었다.
프랑스 말인 것 같아 즉시 서울의 딸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Chouett 로 썼다면 스웨떼로 발음하지 않고 수웨로 하는 발음에 가깝다고 했
다. 만약 스웨떼로 썼다면 Chouette로 써야하며 그 뜻은 올배미란 뜻이란다.
아마도 끝에 붙는 e 자가 빠진 것 같다.
원래가 여행이란 방문지의 이면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했다. 서양
인들의 주장이다. The joy of travel is to see the seamy side of the visi-
ting land. 라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 문인은 이야기 하기를 여행이란 어디를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었를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올래
길은 우리를 숱한 감귤 밭으로 접근을 허용했다. 그간 무수히 먹어왔지만 사
실 그들의 재배 농장을 늦었지만 지금에서 체험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
웠다. 거리에는 올레의 수칙이 써있다. " 놀멍, 쉼멍 갑서 " 라고 제주말로 적
은 것이다.
같은 민족이니 감이 온다. 놀면서 쉬면서 가시요 라는 소리가 아닐까? 표선
면 올래 자치위원회가 준비한 말이다.
또 바닷가에 세워둔 조그만 돌에는 여러가지 동호인들의 덕담이 적혀져 있
다. 가장 눈길이 가는 글은 " 성실이란 세계 어디에서도 통용되는 화폐이다."
하는 말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 자신을 제어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자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이 말은 바로 민주주의의 자세이다. 즉 수신이 되
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망치와 톱으로 정부의 기물을 부수고도 무죄
판결을 주고 받는 이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나라로 성공할 수 있겠는가? 자
문해 본다.
밀감 나무의 잎새는 아몬드 형이다. 조랑조랑 달린 밀감들이 어찌나 흔한지
한 바가지에 2000원씩이라는 표찰을 붙인 무인 판매대가 곳곳에 있다. 꼭 한
입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아기 밀감을 까서 먹으면 칼칼하던 목이 다 시
원해 온다. 열대 해변에서 코코너트 수액으로 목을 추기듯이 올레길에 갈증
을 더는 데는 감귤이 안성마춤이다.
1956년에 태어나 17세에 시집가서 1933년에 작고한 한 할머니가 한라산에서
채취해 심었다는 동백나무 군락지는 장관을 이룬다. 방풍효과를 위해서 심었
다는 그 동백들은 지상에서 2-30m는 족히 자란 것 같다.
늙은 낮선 이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자 한 제주 할머니는 도데체 뭘 볼 것이
있다고 그 먼 곳에서 와서 그리 쏘다니냐고 핀잔섞인 말을 내뱉는다. 정말로
OOO들이 아닌가? 우리 처럼 늙은 것들은 없고 조우하는 연령층은 대개가
젊은이들 뿐이니 말이다.
마지막 코스인 제 5 코스도 아주 환상적이다. 바다를 끼고 도는데 엉에 부딛
는 파도 소리가 역시 South Melbourne 의 그램피언 해안 침식지를 방불
케한다.
엉이란 제주말로 바닷가 돌절벽을 그렇게 부른다. 비행기 시간에 쫒겨서 23
km 구간중 나머지 약 2 km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우리의 위치를 알수 있는 팻말이 전무하다. 난감해 진다. 택시를 콜 하자면
자신의 위치를 밝혀야 하는데 지역정보가 전무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지
나가는 포터 트럭을 강제로 세웠다. 기사는 히치하이커로 오인하고 그냥 지
나치려 하자 필사적으로 막아선 것이다. 그리고 현 유치를 물으니 조금만
더 가면 다리 하나가 있는데 그 다리 이름이 쇠소까 다리라고 한다. 택시 기
사에게 그 다리 이름을 대면 금방 찾아 오고 곧 택시를 탈 수 있다고 전해
준다. 쇠소까 다리? ????
이게 도데체 어느 나라 말이며 무슨 뜻인가! 이윽고 택시를 잡아 탔다. 그
젊은 제주도 토박 운전기사에게 이 쇠소까의 뜻을 물으니 소가 물을 마실
수 있는 연못의 끝자락이라고 이야기 해준다. 참 정감이 가고 그럴듯하다.
역시 제주도는 이국적인 곳이다. 올래야 말로 진정한 여행의 방법이다. 이
미 수백만명이 다녀 갔어도 안내 팻말은 없이 그저 요상한 푸른 화살표가
요소에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여행의 길잡이인 것이다. 오랫만에 제주의 심층을 제발로
자유롭게 걸어다니며 여행다운 여행을 했다. 58년 중학교 입교 개띠 동창
생들이 다리가 성하다고 객기를 부린 것이다.
그래도 1960 년대산 라이카 M4 수동식 카메라에 21mm 슈퍼 앙굴론 광각
렌즈로 종려나무 아래에서 도열해 찍은 단체 사진이 일품이다. 크게 확대
할수록 좋으니 앞으로 닥아올 기회에 필요하다면 영정 사진으로도 좋으
리라!
제주 공항을 이륙한 보잉 여객기는 10여분만에 목포 상공에 이르렀다. 시
속 550 마일이라는데.....